[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0) 휴대용 개인화기 ‘승자총통’

입력 2011-08-07 17:27


조선시대 선조(재위 1567∼1608)는 임진왜란(1592∼1598)이 일어나기 전 전라좌수사 김지에게 휴대용 소형화포를 만들게 합니다. 세종 때 만들어진 독창적인 소총의 단점을 개량·발전시킨 것으로 싸움에서 이긴다는 의미를 살려 승자총통(勝字銃筒)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총의 부리를 길게 하여 사정거리를 늘리고 명중률을 높인 것이 특징이지요.

총구에 화약과 실탄을 장전, 불을 붙여 발사하는 개인용 화기인 승자총통은 차승자총통, 소승자총통, 별승자총통 등이 있었답니다. 이 가운데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는 것은 3점이랍니다. 서울대박물관이 소장 중인 차승자총통(보물 855호)은 같은 종류로는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선조 21년(1588)에 만들었으며 길이 56.8㎝, 안지름 2.3㎝, 바깥지름 3.8㎝입니다.

모양은 대나무와 같은 마디가 6개 있고 화약을 넣는 약실은 다른 곳보다 좀 더 도톰하게 만들었지요. 약실쪽에서 총구쪽으로 네 번째 마디 정도로부터 총신이 휘어진 것이 특징인데, 이는 발사과정에서 화약의 힘을 받아 탄환이 더욱 멀리 나가게 하기 위한 방법이랍니다. ‘화포식언해’ 기록을 보면 차승자총통은 한 번에 철환 5개까지 발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아대박물관 소장 쌍자승자총통(보물 599호)은 총신이 쌍으로 이루어져 한쪽 총신에서 3발을 동시에 장전, 발사할 수 있어 양쪽 6발을 목표에 집중 사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요. 하지만 비, 눈, 바람이 있을 때는 사용하기가 어렵고 총신이 짧아 원거리 사격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으로 임진왜란 때 총신이 긴 반자동식 조총이 도입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만력기묘명승자총통(보물 648호)은 157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존 승자총통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이랍니다. 길이 56.8㎝, 지름 4㎝, 무게 4.5㎏으로 6개의 마디가 있는데, 약실쪽 세 마디의 간격을 총구 쪽보다 좁힌 것은 화약이 터지지 않도록 한 것이죠. 적이 가까이 와서 백병전이 벌어지면 곤봉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답니다.

우리나라 병기제조사에 길이 남을 승자총통이 최근 잇따라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서는 1583년에 제작된 승자총통과 1585년 만들어진 일차승자총통 등 보물급 무기류가 다량 발굴됐답니다. 옛 서울시청 자리는 조선시대 각종 무기류를 제작하던 관청인 군기시(軍器寺)가 있던 곳으로 무기 제작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인 셈이죠.

또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앞 바다에서 해삼을 채취하다 바닥에 묻혀있던 승자총통 등을 캐내 수억원을 받고 팔아넘기려 한 일당이 얼마 전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범인들이 도굴한 승자총통(1583년 제작)은 보물 855호인 차승자총통보다 5년이나 앞선답니다. 이토록 소중한 문화재가 도굴범에 의해 하마터면 시중에 유통될 뻔 했으니 보다 철저한 단속 및 관리가 요구됩니다.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