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금요일 충격파] 시퍼렇게 질린 전광판… 외국인 이어 개인도 ‘투매’

입력 2011-08-05 20:24

“마이너스 칠십…죄다 시퍼렇네. 초상집이네 초상집.”

4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대신증권 본사 1층 객장. 삼삼오오 모여든 개인 투자자들은 하락을 나타내는 녹색 숫자들로만 물든 주식시세 전광판을 가리키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박모(59)씨는 “어제까지 사흘간 86조원이 증발했다는데, 오늘까지 하면 120조원도 넘게 사라질 기세”라며 “그 돈 중 내 돈도 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객장에 마련된 고객용 HTS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윤모(61)씨는 “며칠 전만 해도 주식이 많이 오를 줄로만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당황해했다.

5일 하루 공포가 주식시장을 사로잡았다. 코스피지수가 이달 들어 연일 급락, 3월 동일본 대지진 직후 수준인 2000선 아래까지 무너지자 투자자들은 절망에 빠졌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승승장구를 보였던 한국 코스피가 글로벌 금융불안에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개인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장이 열리자마자 팔자로 나서 이날만 5747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최근 4일간 사라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128조원에 달했다. 지수가 급락하면서 오전 한때 ‘서킷브레이커’(전일 종가 대비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계속되면 주식 거래를 20분간 정지하는 것)가 발동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이달 들어 코스피지수의 하락속도는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신흥국들의 증시에 비해서도 가팔랐다. 증권업계는 “우리나라 경제가 대외 의존도가 높고, 외부 변수에 민감한 구조를 가진 탓에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불거질 때마다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코스피는 지난 1일 미국 채무협상안 잠정 합의 소식이 들렸을 때에는 40포인트 가까이 반등했다가, 제조업지수 등 부정적 경제지표가 발표된 2일부터는 급락 추세를 보였다.

이 같은 구조는 우리 경제의 주력인 수출업종 주식의 추락을 가져왔다. 올 들어 국내 주식 상승세를 이끈 이른바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이 금융불안의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지진 이후 고공행진을 해왔던 화학·정유주는 LG화학이 2일부터 4일까지 13.59% 빠졌고, 금호석유가 17.44%, S-Oil이 14.71% 빠졌다. 현대차는 지난 나흘간 8.93% 떨어졌고, 국내 수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조선업체종목도 10% 이상 주가가 급락했다.

올해 들어 코스피 수익률이 주요국 증시보다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낙폭 역시 큰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코스피는 5.9%의 수익률을 기록, 인도네시아(13.2%), 러시아(12.2%) 증시를 제외하고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과를 보였다. 반면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가 불거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유동성이 좋은 코스피를 중심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는 모양새다. 실제 8월 들어 5일까지 코스피는 10.5%나 떨어지면서 미국 유럽 및 주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국에서 발표될 고용지표, 소매판매 지표 등 경제지표들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대증권 류용석 시장분석팀장은 “미국의 자생적 경기회복 여부를 판단하려면 적어도 다음달 중후반까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