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대상 정치인 기업별로 할당 파문… 전경련 무용론·해체론 제기
입력 2011-08-05 21:31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조직적인 로비 계획을 담은 문건이 발견되면서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일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전경련은 각 대기업 사회공헌 실무 임원들과 회의를 하면서 문건을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문건에는 기업들에게 불리한 입법 저지를 위해 주요 그룹별로 접촉할 정치인 리스트를 할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경련은 국회의원 전원과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김효재 정무수석, 김대기 경제수석을 직접 맡기로 하고 삼성에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이용섭(기재위 간사) 우제창(정무위 간사) 의원을 배정했다. 현대차와 LG SK GS에도 정책위의장이나 각 상임위 간사 등을 접촉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경련은 이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과 후원금, 출판 기념회, 지역구 사업·행사 후원을 통해 지원하고 의원의 지역 민원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라고 제안했다.
전경련이 대기업 이익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이긴 하지만 각 기업에 로비 대상을 직접 할당하고 구체적인 로비 방법까지 제시한 것은 고질적인 정경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특정 정치인을 맡아 집중적으로 로비하라는 것은 과거의 불법정치자금 제공 행태를 또다시 재연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경련 관계자는 “실무자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임원들에게 보고가 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전경련이 기업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무용론이나 해체론도 나오고 있는 만큼 새로운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의(경단련)나 미국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 영국의 영국경제인연합회(CBI), 독일의 독일경제인연합회(BDI), 프랑스의 경제연합회(MEDEF) 등 해외에도 전경련과 비슷한 민간단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단체는 회원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을 선도하는 리더로서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경유착 관행에 젖어 있는 전경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해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은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에게 맡기고 전경련은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웅 선임 기자 y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