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행성’ 펴낸 조용미 “詩 짓는 ‘아름다운 고통’ 이제야 알것 같아요”

입력 2011-08-05 18:05


장마의 계절에 조용미(49) 시인의 ‘물소리에 관한 소고’를 읽는다.

“내 몸 속 세포의 흐름이 저 물소리의 우주적 운율과 다르지 않아 또 몸에 귀 기울여야겠구나/이젠 몸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있겠나 묻지 않는다/물소리가 최대치로 밝아올 때 내 귀가 틔었다/(중략)//물소리는 몸의 실핏줄을 통과해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미묘하게 바뀐다/내 게으른 궁리가 마침내 저 물소리의 음영화법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물소리에 관한 소고’ 부분)

누구나 장마철에 물소리를 듣지만 물소리가 밖이 아니라 자기 몸 안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확연히 인지하는 것은 조용미 시인일 것이다. 이때 물소리는 몸에 갇힌 통증을 잠재우는 치유의 리듬으로 바뀐다.

조용미는 몸의 시인이다. 그는 오랫동안 아팠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몸이 먼저 아파서 매화 필 때를 느끼는 시인. 마치 꽃 몸살을 앓는 한 그루 나무처럼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몸의 통증을 통해 느껴왔고, 너무 아파 자리를 깔고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귀는 세상을 소리로 식별하는 특별한 감각으로 진화되어 왔다.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를 낸 그를 3일 오후 서울 수유동 4·19탑 앞에서 만났다. 거센 소낙비가 내렸고 개울은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급물살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물과 물소리로 풀려나갔다.

“6년 전 정릉으로 이사 온 뒤부터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 느껴요. 산과 가까이 있어서 인데 기가 맞는 것 같아요. 일부러 물소리를 듣기 위해 외출하기도 하지요. 자연을 탐구하면 인간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요. 물소리가 제 성정에 맞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삶을 받았는지, 물소리를 알면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소리를 듣곤 하지요.”

그는 예전 시집에서 아픈 몸 때문에 어둠과 검은 색에 심취했다. 그에게 검은 색은 진실의 색이었다. 옛사람들이 “묵(墨)만으로 오색이 찬란하다. 이렇게 묵만으로도 오색을 갖추는 것을 득의라고 한다”라고 설파한 수묵의 미학에 심취했던 것이다. “당시엔 저도 몰랐는데 어느 날 누군가 날더러 ‘너는 왜 검정 옷과 흰 옷만 입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롱을 열어보니 정말 검정과 흰 옷뿐이더군요. 그만큼 검은 빛에 빠져있었지요. 하지만 몸의 통증이 줄어들면서부터 다른 색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가 입은 상의가 보랏빛이다. 아직은 적응이 안된다며 자꾸 어색해하면서도 그는 분명 무채색의 세계에서 유채색의 세계로 이동 중이었다.

지난해 말, 미국 아이오와국제창작프로그램의 초청을 받아 3개월 동안 머문 기억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무한히 펼쳐진 들판이 있었고 그 들판 위로 석양이 지는 모습은 잊지 못한 풍경 가운데 하나다. “유학자들이 칩거하면서 정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게 주로 고향 부근의 산골짜기라고 할 수 있죠. 제 고향인 경북 고령도 그런 곳인데, 할아버지가 준엄한 유학자이셨지요. 그런 집안의 분위기가 제게 배어 있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유학자들을 ‘극단을 사랑하는 존재들’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저 역시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오히려 지독하게 그 질서에 편입되어 있었고 시를 쓰면서 비로소 그 세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 쓰기의 고통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이젠 알 것 같아요.”

그는 아이오와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시낭송회를 가졌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나름 쉬운 시 5편을 골라 낭송을 마쳤을 때 누군가가 “선생님의 시는 너무 무서워요”라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시편이다. “우리의 피는 무슨 색인가/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캄캄한 천지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죽음도 있지만/어쩐지 당신도 한때 따뜻한 초록 피를 가졌을 것만 같다”(‘얼룩’ 부분)

“그 말을 듣고 정말 서러웠어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곡을 찌른 것이었어요. 그래서 알게 됐죠. 아, 도망갈 수 없구나, 시를 모르는 어떤 사람도 없구나, 라는 사실을. 시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시 앞에서는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근데 제가 말이 너무 많죠? 검은 색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색채를 발견한 제 스스로가 대견해서 말이 많은 것 같은데. 그동안 나를 힐책하고 살았다면 이젠 나를 가여워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계곡물이 분탕질을 하고 있었고 대화는 다시 물소리로 돌아왔다. “근데 이거 아세요? 물소리에도 광기가 있다는 것을. 비 오는 날 숲 속에 혼자 있어 보면 알지요.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는 사실을.”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