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는 되는데… 남자는 반바지 출근 안되나요?
입력 2011-08-05 17:37
홍보맨 김종혁씨의 반바지 도전기
한여름에는 남녀차별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김종혁(38)씨. 김씨는 폭우까지 겹친 올여름, ‘한여름의 남녀차별’ 철폐를 위해 행동에 나섰다. 피켓이라도 들고 1인 시위를 한건가?
“하하…. 폭우가 내리던 날 비 핑계를 대고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했습니다. 민소매에 미니스커트 차림의 그녀들이 늘 부러웠거든요.”
사무실에 나타난 반바지 차림의 그를 보고 입을 ‘딱’ 벌리는 여직원들에게 “폭우에는 우산도 소용없잖아. 그래서…”라고 얼버무렸다.
김씨는 홍보대행사 유끼커뮤니케이션 실장으로, 대외 활동이 잦은 편. 패션 회사와의 미팅 때는 바짓단을 살짝 접고 맨발에 스니커즈를 신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체감온도가 3도쯤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그럴 때마다 동행한 여직원의 시원한 옷차림이 더욱 부러워지면서 ‘도대체 왜 여자는 되고, 남자는 안 되는 거야?’ 중얼중얼.
“내친 김에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반바지를 입고 나가봤죠. 뭐 용기가 좀 필요했지만 한결 시원한 게 괜찮았습니다.”
직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실장님, 체통을 지키셔야죠!’ 등 농담 섞인 퉁바리가 있었지만 ‘젊어 보인다’는 칭찬이 더 많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김 실장은 짙은 색 반바지에서 요즘 유행하는 밝은색 반바지로 패션 감각을 높여 가는 중이다. 김 실장은 앞으로 낮 기온이 35도를 넘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반바지 패션으로 출근할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미팅 회의 등 대외활동이 있는 날은 정장을 입어야겠죠. 하지만 시원한 차림의 여직원들을 째려보는 일은 이제 없을 겁니다. 하하”
반바지 패션의 남녀평등을 실현(?)한 김 실장은 ‘사실은 동네 아저씨처럼 보일까봐 매우 신경 쓰인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남성복 브랜드 트루젠 디자인실 민정호 실장은 “중년남성들은 자칫 잘못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반바지를 입을 때는 상의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바지 위에 헐렁한 티셔츠만 입거나 점퍼를 걸친다면 그야말로 ‘동네 아저씨 패션’이 될 수밖에 없다. 민 실장은 “캐주얼 재킷을 갖춰 입거나 조끼로 악센트를 주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처음 반바지를 입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밝은 색상보다는 감색이나 검정색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상부터 시작하는 것이 덜 부담스럽다.
캐주얼브랜드 스파이시칼라 디자인팀 김희철 팀장은 허리벨트 구두 등 소품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특히 반바지에 정장구두를 신는 것은 양복에 운동화를 신는 격이므로 피해야 한다. 스니커즈나 보트 슈즈가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김 팀장은 “양말이 신 밖으로 나오면 촌스러우니 맨발로 신거나 목이 짧은 양말을 신으라”고 했다.
연예인들이 반바지를 입고 방송에 나오면서 반바지는 운동복, 또는 휴양지 패션이란 고정관념이 많이 바뀌었다. 아예 반바지를 근무복으로 정한 회사도 있다. 쌍방울트라이그룹은 지난 6월말부터 반팔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이 회사 이용훈 대리는 “보수적 기업 이미지 탈피, 창의성 제고, 에너지 절약 등을 내걸고 사장님께서 솔선수범하고 계시다”면서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자랑했다.
반바지가 에너지도 절약하게 하고, 편하고, 창의성도 높여 준다면 근무복으로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게 분명하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성 직장인 1080명에게 ‘반바지를 입고 근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50.5%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상관없다는 15.0%, 반대는 34.5%였다. 남성 2명 중 1명은 반바지를 입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미지컨설턴트 정연아씨는 “반바지가 편하고 시원해도 비즈니스 자리에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정씨는 “반바지는 물론 반소매 셔츠, 마 바지도 품격을 떨어뜨리는 차림이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라면 한여름이라도 서머울 정장으로 갖춰 입으라”고 조언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