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승주] 철창에 갇힌 파라오
입력 2011-08-05 17:43
지난 3일,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던 83세 독재자가 마침내 철창에 들어갔다. 중동역사, 세계 민주화 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살아있는 파라오’라 불렸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에게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흰 죄수복을 입고 이동 침대에 누운 채 피고석 철창에 갇힌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가 처음부터 독재자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었다. 1969년 공군참모총장 재직 당시에는 이집트 공군을 재건해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73년 제4차 중동전쟁 초기에 이스라엘군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인 후에는 이집트의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런 명성을 기반으로 75년 안와르 사다트 정부의 부통령에 임명됐다. 81년 사다트가 암살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불안정한 정국을 비상계엄법으로 통제했고, 이 법은 지금까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정권안보의 도구로 활용됐다. 무바라크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다섯 차례 연임에 성공했다. 이것도 모자라 2002년에는 차남을 집권당의 핵심 요직에 임명했다. 부자 권력세습을 노린 것이다.
재임기간 중에는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 규모는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대략 700억 달러(약 77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에는 평화적인 반정부 시위대 진압에 실탄 사용을 허용해 무려 850여명을 숨지게 했다. 그는 지난 2월 시민들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났다. 무바라크의 역사적인 첫 재판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바로 그 날,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탱크 수백 대로 시위대의 거점 도시를 장악했다. 조준 사격으로 9세 소녀도 희생됐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역시 ‘아랍의 봄’에 저항하며 시위대에 포탄을 퍼붓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시리아에서는 유혈진압으로 2000여명이 숨졌다. 리비아의 사망자 수는 공식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중동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에 의해 법정에 선 독재자를 보며 시리아와 리비아의 독재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독재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는 이들 국가에도 무바라크의 재판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