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으로 외치는 DMZ의 슬픈 진실…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수상한 파라다이스’
입력 2011-08-07 10:59
가녀린 여성 무용수가 위태롭게 발을 내딛는다. 발밑에서는 남자 무용수들이 부산히 움직이며 아크릴 판을 맞춘다. 발 닿을 공간을 만드는 인상이고, 물살 빠른 냇가의 징검다리를 간신히 건너는 듯한 모습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수상한 파라다이스’ 중 ‘불편한 조화’라는 제목의 안무다.
‘수상한 파라다이스’란 전쟁의 흔적과 오랜 침묵, 무질서한 자연이 스산하게 얽힌 비무장지대를 일컫는다. ‘진혼’ ‘업보’ ‘순응’ ‘불편한 조화’ ‘전쟁’ ‘연민’ 따위 이름이 붙은 안무들에서 창작자의 고민이 읽힌다. 무대는 포탄 흔적이 역력한 동굴 등 전쟁터의 모습을 모티브로 꾸며졌다. ‘불편한 조화’의 경우 한 사람의 평화로움을 위해 수없이 많은 이들의 노고가 필요한 현실 세계를 상징한다.
발레나 한국무용을 즐기는 관객들도 선뜻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대무용이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은 이번에 난해함을 버렸다. 홍승엽 예술감독은 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리허설 후 간담회를 갖고 “그동안은 안무할 때 혼자만의 생각을 위주로 풀었는데 이번엔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정서 중 내 느낌과 맞아 떨어지는 게 무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 때 전방에서 경계근무를 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작품으로 정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홍 감독은 “남북이라든가 자유주의, 공산주의 등 작품에서 이념적 요소는 배제했다”며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폭력은 폭력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DMZ 안에서 자라온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수상한 파라다이스’는 폭력과 자연이라는 키워드가 웅변하듯 정중동의 조용하고도 역동적인 움직임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남성 무용수가 여러 명 얽혀 한 몸처럼 보이는 가운데 좌에서 우로 구르는 안무 ‘업보’ 장면이 눈길을 끄는데, 민족의 면면한 역사적 수난을 상징한다는 게 홍 감독의 말이다. 홍 감독은 “이 작품 ‘수상한 파라다이스’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업보’가 아닌가 싶다”면서 “(‘업보’는) 젊은 나이에 (DMZ에서) 희생된 여러 생명들에게 보내는 진혼곡”이라고 덧붙였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