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서일 후손 “번번이 박대한 보훈처에 섭섭… 이제야 실낱희망”

입력 2011-08-04 18:36


중국에서 태어난 서진우(58·사진·서울 중림동)씨는 1998년 1월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쉽게 귀화가 받아들여졌다. 일제 강점기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조직했던 증조부 서일 선생과 건국포장까지 받은 조부 서윤제씨 덕분이었다.

하지만 조국은 그가 꿈에 그리던 곳이 아니었다. 국가로부터 환영 받지 못한 서씨는 곧바로 일당 4만∼4만5000원의 일용직 노동자 신세로 전락했다. 독립투사의 후손에게 대한민국은 조선족이란 이유로 온갖 설움을 당했던 중국보다도 더 냉혹했다.

여비를 마련하지 못해 중국 하얼빈에 남겨둔 아내와 딸을 만나러 가지도 못했다. 가족의 생계비는커녕 자신의 기본 생활조차 연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힘든 삶을 살던 서씨는 2003년 처음으로 국가보훈처에 보상금을 신청했다. 독립유공자 자손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좌절됐다. 보훈처는 “92년 먼저 귀국한 청구인의 아버지가 이미 타갔다”며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다.

서씨에게 이 소식은 절망에 가까웠다. 할아버지들이 목숨을 던져 세운 조국이 그 후손을 이리 박대할 순 없다고 느낀 그는 수차례 이의를 제기했다. 그때마다 보훈처는 “지급을 가능하게 하는 규정이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서씨는 4일 국민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훈처 건물만 봐도 한이 서리고 섭섭했다”고 했다.

점점 한(漢)족 문화에 동화돼 가는 딸이 안타까웠던 서씨는 “자식만은 꼭 한국에서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언젠가는 가족 모두를 데려오겠다고 굳게 마음도 먹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서씨에게 지난 3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그의 보상금 지급 거부 취소 신청을 받아들여 “보훈처는 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것이다. 앞서 서씨는 2년 전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냈고, 권익위는 행정심판위에 취소 신청을 내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씨는 보훈처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다. 오히려 보훈처는 그가 두 차례 전화를 걸자,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현재 월세 집에 살고 있는 서씨는 “보상금을 받아도 전셋집 마련조차 힘들다”면서 “이마저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직도 내 미래는 하나도 밝지 않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