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장애 가진 이들에게 희망주기 위해… 나는 달린다”

입력 2011-08-04 21:51


“제가 뛰는 모습을 보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기쁨과 영감을 얻는 것이 제 삶의 가장 큰 목표이자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공)는 오는 27일부터 열리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선수 중 하나다. 양쪽 다리에 보철기를 끼고 달려 ‘의족 스프린터’로 불리는 그는 비장애인과 당당히 겨뤄 세계대회 출전권을 획득한 인간 승리의 상징이다.

그가 지난 3일 국민일보에 보내온 이메일 인터뷰에 대한 답변에는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찼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도 겸손해했다. 그는 육상 선수가 된 이후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나를 보고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록 장애가 있지만 나는 전혀 여기에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훈련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에게도 노력을 당부했다.

육상 선수가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재활치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구, 테니스, 레슬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좋아한 그는 고교시절 럭비 선수로 활동했다. 그런데 2003년 무릎 부상을 당해 재활치료를 받게 됐는데, 치료 중 하나가 트랙을 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지금의 코치인 엠피어 로를 만나게 됐다.

그는 “로 코치는 장애인 올림픽 챔피언 3명을 훈련시킨 적이 있다”며 “그와 운동하면서 내가 육상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와 함께 육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로 코치는 그에게 “너는 할 수 있다”며 의욕을 심어주는 등 지금도 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육상 선수로서 새롭게 출발한 그에게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육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고 때문이었다. 그는 2009년 2월 요하네스버그 인근 발강(Vaal River)에서 보트 충돌 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로 머리와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이 끔찍한 사고는 나의 삶의 목적과 의지를 더 강하게 했다. 부상을 극복하고 더욱 더 육상에 집중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만큼 자신의 롤 모델도 위기와 아픔을 극복한 선수들을 꼽았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먼저 언급한 선수는 프랭크 프레데릭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콜린 잭슨 전 허들 챔피언이다.

프레데릭스 위원은 1990년대 단거리 육상에서 ‘만년 2인자’ 소리를 들었던 불운의 스타 출신이지만 은퇴 후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를 대표하는 IOC 선수분과위원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영국 출신으로 90년대 허들 부문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던 잭슨은 국제무대에서 피스토리우스가 일반인이 뛰는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사람이다.

바이크 선수인 발렌티노 로시도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최고의 선수였던 로시는 2008년 발목 골절상을 당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돌아왔다. 사실 나는 로시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고 있다. 로시는 매년 내 생일 때 직접 사인한 티셔츠를 보내준다. 언젠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구 대회에 대해 그는 “가장 권위 있는 육상대회에서 조국인 남아공을 위해 뛸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번 대회는 톱클래스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고 나는 그들과 함께 뛰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내가 대구 스타디움 트랙을 도는 순간은 내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의 의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플렉스 풋 치타’라는 의족이 일반 육상 선수들의 다리에 비해 무게가 절반에 지나지 않아 기록 단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도 이런 논란이 제기되자 그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그의 출전을 금지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을 제소한 끝에 승소하기도 했다. 최근 다시 제기된 논란에 대해 그는 “나는 누구보다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의 성적 목표는 의외로 소박했다. 메달을 따거나 세계기록 경신 같은 대단한 목표가 아닌 ‘예선 통과’였다. 그는 “대구 대회는 그동안 내가 참가한 경기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최고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대회”라며 “따라서 내가 이들 선수와 경쟁해 예선을 통과한다면 정말 황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400m 최고기록은 45초07로 대구 세계선수권대회와 내년 런던올림픽 A기준 기록인 45초25보다 좋지만 세계기록(43초18)과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육상 선수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내 최고기록에 근접하는 기록을 냈으면 좋겠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지금껏 한국엔 한번도 온 적이 없지만 한국 문화와 역사를 경험해 보길 고대했다. 이어 “대구 스타디움 사진들을 봤는데 매우 놀라웠다. 한국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무척 영광스럽고 흥분된다. 한국에서 빨리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뵙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