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는 국립오페라합창단 상설화 약속 지켜주오” 거리로 내몰린 성악가들 ‘슬픈 합창’

입력 2011-08-04 21:35


음대 졸업 뒤 국립오페라합창단의 객원 멤버로 7∼8년간 오페라합창을 하며 경력을 쌓은 A씨. 그는 오페라합창단 해체 후 공연 2∼3주를 앞두고 “무대에 설수 있느냐”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올해 공연된 ‘파우스트’나 ‘시몬 보카네그라’ 등이 그렇게 합류하게 된 작품들이다. 연습이 충분할 리 없었다. “합창단이 해체한 뒤엔 인원 확보가 어려워진 건지 임박해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전에는 공연 2∼3달 전에 연습을 시작해서 노래를 확실히 익힌 다음 액팅(연기요소)까지 여러 번 반복했는데 이제는 그런 여유가 없어진 거죠.”

거리에 나선 음악가들

국립합창단, 의정부시립합창단, 모스트보이시스, 과천소년소녀합창단, 나라합창단…. 최근 국립오페라단 공연에 불려온 합창단들이다. 인원이 부족하면 2∼3곳이 한 무대에 서기도 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A씨 같은 객원 멤버를 모집한다. 전속 합창단인 오페라합창단이 2009년 7월 해체됐기 때문이다. 부르는 국립오페라단도, 불려 다니는 합창단원들도 이런 방식이 쉽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마음이 복잡한 이들은 국립오페라합창단 후신인 나라합창단원들이었다. 국립오페라단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똑같은 일을 신분만 바뀐 채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해고된 뒤 국립오페라단에 ‘알바생’처럼 불려 다니길 2년. 최근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나라합창단마저 존폐기로에 서게 됐다. 나라합창단원 중 18명은 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됐을 그때처럼 다시 연습실 대신 거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항의시위를 위해서였다.

오페라합창단 해체 후 지난 2년간 나라합창단은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왔다. 노동부와의 계약은 지난 7월 만료됐다. 지원이 끊긴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7월까지 1년간 추가 지원을 약속하긴 했지만 조건이 따라붙었다. ‘만료 후 단체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17명은 확약서에 서명한 반면, 단원 중 12명은 거부했다. 이들 12명에 합창단 입단 기간이 짧아 재계약 대상이 아닌 6명이 가세했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18명의 대표격인 오페라합창단 전 단원 문대균씨를 만났다. 1년 재계약마저 거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나라합창단 창설 당시 문화부는 3년 안에 13억2000만원을 투입해 오페라합창단을 상설 조직으로 만들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며 “정병국 문화부 장관이 국회 문방위장(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으로 재직하던 시절 찾아갔을 때는 ‘오페라합창단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선처를 약속해놓고 장관이 된 후엔 만나주지조차 않는다”고 분개했다.

“약속 지키라”는 단원들 vs “약속 안했다”는 문화부

문화부 얘기는 완전히 다르다. 당시 이들과 접촉했던 문화부 담당 국장은 “일개 국장이 예산에 관한 사안을 그리 쉽게 약속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당시 논의된 여러 안 중 하나를 (합창단원들이) 마음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02년 국립오페라단 산하 조직으로 창설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은 ‘규정상 합창단은 직제에 없는 조직’이라는 이유로 2009년 전격해체됐다. 시위가 벌어졌고 파문이 커지자 문화부는 그 해 4월 해고된 이들을 고용해 나라합창단을 만든 뒤 3년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문제는 일단락된 듯했지만, 사실 양측은 ‘약속’의 의미를 두고 다른 해석을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임 사태의 장본인인 이소영 전 국립오페라단장의 임기가 지난달 13일 종료됐다. 갈 곳 없어진 전 단원들은 신임 단장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오페라를 아는 분이라면 오페라합창단의 필요성도 누구나 절감할 것”(문대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오페라합창은 연기력과 약간의 무용까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반 합창과는 분명히 다르다”며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창단 이후 꾸준히 국립오페라단과 공연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만큼 합창단을 다시 살려야 한다. 신임 국립오페라단장이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