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
입력 2011-08-04 17:54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라는 영어 표현은 곧잘 쓰이는 숙어다. 궁지에 몰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둘 다 나쁜 것들이어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말한다.
근대 항해용어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즉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귀환 항해 도중 한쪽은 머리 여섯 개 달린 괴물 스퀼라, 다른 한쪽은 바다 소용돌이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요 며칠 새 또다시 불거진 일본의 독도,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 소란을 보면서 머리에 떠오른 게 바로 이 영어 표현이었다. 물론 그 말의 본디 뜻대로 우리가 중국과 일본(또는 그들의 주장) 중 어느 한쪽을 택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어쩌면 그렇게 난형난제랄 정도로 ‘나쁜’ 두 이웃 사이에 끼여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야 하는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난다.
중화패권주의와 新군국주의
사실 한반도는 거의 유사 이래 20세기까지 중국과 일본에 의해 끊임없이 국토를 유린당했고, 급기야는 국권까지 빼앗겼다. 그런 두 나라가 각각 근세 말 서구 열강의 서세동점(西勢東漸)과 20세기 중반 2차대전 패전으로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이제 다시 한반도를 향한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역사적으로나 실효적 지배상태로 보나 우리 영토 또는 배타적경제수역(EEZ)내 관할 지역인 독도와 이어도에 다케시마(竹島), 쑤옌자오(蘇巖礁)라는 자기들 식 이름을 턱하니 붙여놓고 자기들 것이라고 우길 리가 없다.
독도와 이어도를 둘러싼 양국의 침탈 공세는 단순한 영토적 야욕이라기보다 해저 자원 및 전략 요충 확보가 주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중국의 중화패권주의와 신군국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가 작용하고 있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실제로 중국은 일본의 올해 방위백서가 지적했듯 남사군도 등 ‘주변국가와 이해가 대립하는 문제에서 고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응’을 하고 있다. 또 소수민족을 가혹하게 탄압하는가 하면 주변 역사 침탈인 동북·서북공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고 최초의 항공모함 바랴그의 시험운항을 앞두고 있는 등 착실하게 군비를 확장하는 모습은 말로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는 중국의 저의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도 마찬가지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특히 독도문제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대한항공 이용 금지령을 내리고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갈등에 전투기를 띄우는 등 대단히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일본의 전반적인 보수 우경화는 이미 대세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이 조만간 신군국주의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해도 경계해야 마땅하다.
잠재적 위협에도 대비해야
그런데도 우리의 대비태세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게 축소 지향의 국방개혁과 지지부진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다. 천안함·연평도사태를 겪은 뒤 마련된 국방개혁 307계획은 주변상황 변화에 따른 만일의 사태, 곧 중·일 등에 의한 잠재적 위협보다 당면한 최대 위협인 북한의 도발에 초점을 맞춰 전력증강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두말 할 것 없이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니 일면 당연하다. 하지만 주변세력에 의한 잠재적 위협도 무시할 수 없다.
국방예산이 한정돼 있긴 하지만 막강한 군사력, 특히 해군력을 갖춘 중·일의 위협에도 대비해야 옳다. 아울러 한줌밖에 안 되는 친북·반미세력에 발목 잡혀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과 시급성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