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가정·사회·학교 함께해야 인성 갖춘 인재양성”

입력 2011-08-04 21:47


안병만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달 2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정·사회·학교가 함께 하는 교육선진화 방안’과 ‘이공계 르네상스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방안’을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배석한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자문회의가 제안한 방안들을 적극 검토해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백희영 여성가족부장관,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등이 앉아있었다.

여러 부처 장관이 참석한 것은 범부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설치근거가 법률로 명시된 이 자문회의의 의장은 대통령이다. 지난해 8월까지 2년여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지내고 이번 보고를 주도한 안 부의장을 4일 서울 수송동 재보험빌딩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육선진화·이공계 르네상스 제안… 안병만 교육과학자문회의 부의장

-가정·사회·학교 연계 강화가 왜 필요한가.

“자문회의가 전국의 교사와 학부모, 학생 1739명(교사 481명, 학부모 781명, 학생 47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인성과 창의성 교육을 어디에서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학부모의 60.9%가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진다고 답했다. 학생의 47.6%가 창의성 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반응이었다. 교사들은 생각이 달랐다. 교사들은 창의성(84.4%)도, 인성(78.2%)도 학교에서 길러진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교과부 장관시절 학생들의 학습량을 줄이고 자기주도학습 등을 권장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의 창의성, 인성교육을 길러주도록 애를 썼는데 학교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1∼4위 수준인데 인성과 사회성 수준은 OECD 최하위권(21위)이다. 선진국들은 지식, 창의성, 인성을 고루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하여 가정, 사회가 동참하는 학습사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주5일제 수업을 전면 실시하는데 가정·사회·학교의 연계가 절실하다. 서양 속담에 ‘한 아이를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학교와 가정의 연계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교사와 학부모의 상호 불신을 꼽았는데.

“그래서 교사-학부모 면담 정례화를 제안했다. 최소 한 학기에 한 차례씩 교사가 학부모와 얼굴을 맞대고 상담하면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학부모의 적극적인 학교교육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부모의 학교참여 휴가제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다. 공공기관부터 실시하면 점차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교사들은 지역사회와 연계하려고 해도 쓸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반응인데.

“찾아보면 많이 있다. 서울 마포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전남 목포 YMCA의 경우 학교와 지역사회가 훌륭하게 연계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가정과 지역사회, 학교간 연계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가정과 사회가 함께하는 토요학교’(가사토)의 운영을 제안했다. 가사토의 기본 개념은 교육지원청이 아닌 기초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토요일에 학생, 학부모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창의 인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인적 자원으로 문화·체육·예술인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물적자원으로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체육시설, 청소년수련시설, 대학, 기업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이 대통령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즉각 실천하라고 말했다.”

-가정의 역할과 참여를 강조할수록 결손가정, 다문화가정, 소년소녀가정 등 소외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텐데.

“소외계층 가정 자녀일수록 가사토 프로그램 참여가 우선적으로 배려돼야 한다. 학부모의 역량 강화를 위해 현재 52개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부모지원센터를 전국의 모든 교육지원청(178개)으로 확대해야 한다. 맞벌이 가정, 저소득층 가정, 한부모 가정은 교사와 전문가들이 ‘찾아가는 학부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교육정책조정회의의 신설을 제안한 까닭은.

“학교교육은 교과부가 관장하지만 교육 관련 정책을 다루는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부처간 대화나 연계가 부족하다보니 중복되는 정책이 많고 수능시험과목 같이 중요한 사안이 부처 간 조율 없이 발표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제정책조정회의처럼 교과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계 부처 장관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상시적으로 모여 논의하면 비효율적인 정책 집행을 미리 막을 수 있다. 가사토 같은 것이 당장 교육정책조정회의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다.”

-이공계 르네상스란 뭔가.

“한마디로 이공계 우대방안이다. 경제발전의 주역이 되어야 할 과학기술 인력의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는 데 반해 우수인재의 이공계기피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녹색기술, 첨단융합, 고부가서비스 등 미래 신성장동력분야에서 필요한 과학기술인력은 2018년까지 약 300만명이다. 이 중 석·박사급 핵심연구인력만 62만명이 확보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이공계 학생들이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의·약학 분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고교 내신 1등급 출신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의대의 경우 최근 2년간 62.5%에서 78.9%로 급증한 반면 이공계는 40%로 떨어졌다. 이공계 박사의 해외유출현상도 심각하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가적으로 볼 때 우려스럽다. 이공계 출신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이 대부분 백화점식으로 운영되면서 전공심화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자문위는 진단했다. 이공계 우대책을 논하려면 이공계 대학의 구조조정이나 경쟁력강화방안도 함께 모색되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이 위기다. 2010년 세계대학평가를 보면 카이스트와 서울대가 각각 24위, 38위를 차지했는데 세계 상위권 대학의 경쟁력에 비교하면 2∼3배 격차가 날만큼 뒤처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 공대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50명이 넘는데 세계적인 공과대학들은 10명 안팎이다. 창조형 과학기술 역량도 부족하다.

이를 해소하려면 산학협력중점교수를 대거 충원해야 한다. 기업이나 공공연구소에서 은퇴하는 전문가들을 대학이 적극 유입하여 교수요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재 산학협력중점교수는 전국적으로 220명에 불과하다. 내년에 당장 2000명으로 늘려야 한다. 산학협력중점교수를 2020년까지 1만명으로 확대하면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전국 평균 20명 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 과학기술인력을 대학교수로 대거 흡수하면 이공계 기피현상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산학협력이 원활해지고 현장중심 공학교육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내년부터 동아시아사가 고교 선택과목으로 새롭게 채택된다.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고 한·중 간에도 동북공정 등 갈등이 잠복해있다. 한·중·일 3국 간 화해와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제작된 새로운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일부 비판도 있다.

“올바른 역사교육은 정체성과 상린(相隣)의 조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해왔는지 알고 이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침해받지 않는 범위에서는 이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지진피해가 났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해복구를 도운 것이 좋은 상린의 예다. 최근 일본의 일부 우파 정치인들이 김포공항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갔는데 일본 내에서는 별 관심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극소수 세력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위프로젝트는 위기학생들을 위한 안전관리망으로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대표적인 교육정책이었다. 그런데 최근 위센터의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예산이 줄어들어 정부의 정책의지가 약화된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다.

“위기학생들 문제는 2년전 국민일보의 집중 보도를 통해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위기학생들을 돌보는 전문가들을 길러내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특별교부금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일반 예산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프로젝트를 학생지도의 근간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자문회의는 10년 후에도 우리나라가 더욱 발전시켜야 할 교육과학기술정책 12개를 선정해 11월 중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인데 여기에 위프로젝트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석운 특집기획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