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법정에 서다… 죄수복 차림 이동침대 누운채 등장
입력 2011-08-04 00:15
호스니 무바라크(83) 전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첫 재판이 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수도 카이로의 경찰학교에 마련된 임시 재판정에서 개최됐다. 지난 2월 시민혁명에 의해 축출된 후 무바라크가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바라크, 6개월 만에 공개석상 첫 등장=‘살아있는 파라오’라 불렸던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이날 이른 아침, 홍해 휴양지인 샤름 엘셰이크 병원에서 카이로까지 헬리콥터로 이송됐다. 헬기에서 내린 그는 응급차에 실려 재판정에 도착했다. 건강악화설이 돌았던 무바라크는 흰 죄수복을 입고 이동 침대에 누운 채 법정에 나타났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만 29년 독재 끝에 물러난 지 6개월 만에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으로 쫓겨난 독재자가 재판정에 나온 것도 처음이다.
카이로 형사법원 아흐메드 리팟 법원장의 주관으로 진행된 재판은 이집트 국영TV를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재판에는 그의 두 아들 알라와 가말, 하비브 알아들리 전 내무장관 등 총 10명이 출석했다. 모두 흰 죄수복 차림으로 철창에 갇혀 있었다.
시민혁명 희생자 가족 등 600여명이 재판을 참관했다. 당국은 이들이 피고들에게 물건을 던지는 등의 소란을 막기 위해 보호 철창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무바라크는 올해 초 시민혁명 기간 유혈 진압 지시를 내려 850여명을 숨지게 하고, 독재 기간 동안 직위와 권한을 이용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4시간 가까이 이어진 재판에서 무바라크는 “나는 무죄다. 이들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한다”라고 주장했다. AP통신은 하지만 유혈 진압 지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이들에게는 사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이집트에서 사형은 참수형을 의미한다.
재판장은 오는 15일 재판을 재개한다고 발표했으며, 무바라크에게는 그때까지 카이로 군병원에 머무르라고 명령했다. 재판 기간은 총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법정 밖에선 신발 던지기도=재판이 열린 경찰학교 밖에서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대형 화면으로 재판과정을 지켜봤다. 이들은 무바라크가 혐의를 부인하자 경멸의 뜻으로 화면에 비친 무바라크의 얼굴을 향해 신발을 던지기도 했다.
재판에 앞서 무바라크의 지지자와 그에 반대하는 시민 수백명이 돌멩이와 병을 던지며 몸싸움을 벌였다.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학교 주변에 1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주변에 철조망을 둘렀다.
◇혐의 제대로 밝혀낼까=무바라크가 헬리콥터로 이송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재판 참석은 불투명했다. 무바라크의 변호인단은 이미 법원에 ‘건강 악화로 재판에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무바라크에게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그에게 카이로로 이동해 재판을 받도록 강제 명령을 내렸다.
독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고대하고 있는 이집트 국민들은 이 재판이 과연 무바라크의 혐의를 다 밝혀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새 군부가 이집트에 민주주의가 정착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무바라크의 재판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