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리히텐슈타인 가짜 그림 사기사건

입력 2011-08-03 20:29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미국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그림이 법정에 다시 등장했다. 삼성특검과 오리온그룹 수사 때는 리히텐슈타인의 진짜 그림이었지만 이번엔 가짜 그림이 문제가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김시철)는 리히텐슈타인의 65년 작품 ‘메이비(M-Maybe·사진)’의 모조품을 치과의사 장모씨 부부에게 150억원에 판매하려 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불구속 기소된 프랑스 파리 거주 화상 함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함씨가 가짜 그림을 건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돈을 준 피해자는 치과의사 부부가 아닌 강남 Y백화점 전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에서 치과병원과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는 장씨 부부는 2008년 5월 함씨를 만나 ‘메이비’ 그림 얘기를 들었다. 장씨 부부는 과거 함씨와 앤디 워홀, 톰 웨슬만 등 유명 작가의 그림을 거래해 친분이 있었다. 장씨 부부는 친분이 있던 Y백화점 전 사장 김모씨를 찾아가 “파리의 유명 컬렉터 함씨가 삼성특검 수사에서 유명해진 ‘행복한 눈물’의 작가 리히텐슈타인 그림을 200억원에 팔겠다고 한다. 사두면 나중에 400억원은 받을 수 있다”며 구입을 권유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만화 이미지를 차용하기 때문에 말풍선과 글씨가 있는 작품이 더 비싸다. 2008년 삼성특검이 진품 감정까지 벌였던 ‘행복한 눈물’은 구입가가 86억원으로 알려졌다.

재력이 풍부한 김씨는 2008년 8월 이 그림을 200억원에 구입키로 계약서를 쓴 뒤 장씨 부부에게 계약금으로 30억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장씨 부부는 함씨와 50억원이 싼 150억원에 별도 매매계약을 맺었고, 장씨 부부는 김씨가 지불한 돈 30억원 가운데 25억원만 함씨에게 건넸다.

가짜 그림은 김씨의 서울 방배동 집으로 배달됐다. 하지만 이 그림은 함씨가 2006년 파리 샤틀레 지구에 있는 미국 팝아트 가구점에서 구입한 모사품이었다. 장씨 부부는 법정에서 “함씨가 ‘유명 팝아티스트는 비슷한 그림을 크기만 달리해 여러 장 그린다’고 말해 진짜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나중에 가짜 그림이라는 걸 알게 된 장씨 부부는 함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함씨가 받은 25억원은 장씨 부부의 돈이 아니며, 가짜 그림을 산 실제 피해자 김씨의 돈이기 때문에 장씨 부부가 사기 피해를 본 것은 없다”며 장씨 부부가 고소한 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피해자 김씨는 별도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