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방대책, 수준을 높여라-(5) 전문가 좌담] “한반도, 이젠 아열대성 기후… 기존 시스템 바꿔야”
입력 2011-08-03 21:33
사상 유례없는 집중폭우로 수도 서울의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또 수십명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도 컸다. 소방 당국은 104년 만의 천재(天災)라고 밝혔지만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30일부터 수해 원인과 수해방지 시스템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을 시리즈로 짚어왔다. 마지막으로 선진 수방 시스템 마련을 위한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좌담은 3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회의실에서 방기성 소방방재청 차장, 정상만 국립방재연구소장, 윤명오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가 참석해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참석자
정상만 방재연구소장
윤명오 서울시립대 교수
방기성 소방방재청 차장
사회=박현동 편집국 부국장
-이번 폭우 피해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상만 소장=한반도 기후는 이미 아열대성으로 변화되고 있다. 국지적 집중폭우 등은 이제 이상기후가 아니라 일상기후다. 시간당 30㎜ 이상 강우량을 나타냈던 횟수는 1970년대 48차례, 80년대 61차례, 90년대 68차례, 2000년대 72차례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수방 시스템은 과거 그대로다.
△윤명오 교수=물폭탄이라기보다 흙폭탄이다. 인재냐 천재냐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기본적으로 짧은 시간에 폭우가 내렸기 때문이지만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초래한 참사다. 자연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만 반대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방기성 차장=연평균 강우량이 1300㎜인데 이번에 서울 강남 지역에 500㎜ 이상의 비가 내렸다. 도시 설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비가 온 것이다. 책임 규명은 해야겠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비가 내렸다.
-우면산 산사태의 원인으로 산 정상에 있는 공군부대가 지목받고 있는데.
△정 소장=군 때문이라고 단정짓기 힘들다. 토사는 물보다 5배 정도 힘이 세다. 서울 우면동 형촌마을 인근 저수지에는 생태공원 사업 때문에 저수지에 항상 물을 가둬놓는다. 저류시설로서 작동을 제대로 하려면 여름에 물을 빼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아래에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자연배수로를 덮고 관수로를 설치했다. 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저수지에 모이지 못하고 넘쳤다. 결국 관수로가 이를 커버하지 못하자 흙탕물이 마을을 덮친 것이다. 자연배수로를 그대로 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윤 교수=우면산 산사태의 경우 군 부대가 미리 암거(暗渠·지하에 매설된 배수로) 등을 설치했더라면 물폭탄은 맞아도 흙폭탄은 안 맞았을 것이다. 군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정책적 감시 시스템이 부족했다. 자발적으로 방재 시설을 갖추도록 하면 경제논리에 밀리게 된다. 산림청과 지자체 간의 책임공방이 있었는데 아파트에 연접한 산의 붕괴 위험을 산림청이 잘 알겠는가. 자치단체 수준에서 대응책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방 차장=우면산의 경우 산사태가 발생하기까지는 수십 가지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물리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후죽순 들어선 펜션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윤 교수=펜션이 위험하다고 해서 ‘자연에 손을 대면 안 된다, 개발은 안 된다’와 같은 극단적 안전지상주의로 갈 수는 없다. 절충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욕심을 덜 내자는 것이다. 산책로를 한꺼번에 많이 건설하면 단체장의 인기를 높일 수는 있어도 또 다른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개발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얘기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 소장=2006년 7월 강원도 인제·평창에 큰 홍수가 났을 때도 무분별하게 건설된 펜션 때문에 피해가 컸다. 펜션과 관련된 규제는 수질 악화에 대한 것만 있지 재해와 관련된 것은 거의 없다. 또 과도한 인공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삼가야 한다.
△방 차장=펜션을 지을 때 옹벽을 쌓고, 배수로를 파는 것은 건축의 기본이다. 하지만 기준에 맞게 제대로 하는지는 의문이다. 펜션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은 옳지 않다. 펜션이 많은 가평에도 산사태가 많이 났는데 펜션은 한 곳도 안 다쳤다. 펜션을 시한폭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 건축업자나 설계자가 얼마나 기준을 지키느냐에 따라 다르다.
-정부의 4대강 사업 덕택에 수해가 줄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디자인 중심의 개발이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정 소장=4대강 본류에는 이번에 홍수 피해가 거의 없었다. 이번보다 비가 덜 내렸을 때도 강이 범람했는데 이번에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4대강 공사가 수방에 도움이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홍수 예방 효과를 높이려면 지류와 지천을 정비해야 한다. 과도한 인공 구조물은 앞으로 삼가야 한다.
△윤 교수=그릇이 커지면 물이 덜 넘친다. 4대강 주변에 홍수가 덜했다면 그런 이유 아니겠느냐.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의 친수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강에 수영장을 짓고, 대형 주차장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계속성을 고려한 개발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정 소장=지금까지는 하천 중심 수방 대책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도시 수방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 아스팔트에는 빗물이 스며들지 못해 유출량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도시와 구도시, 다르게 홍수 방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신도시의 경우 설계 기준을 높여 하수관거 규모를 크게 하거나 저류 시설을 넓힐 수 있으며 배수펌프장을 설치할 여건이 된다. 구도시에는 우수관거를 크게 넓히기 어렵다. 서울 지역에 왔던 규모의 폭우에 대비하기 위한 우수관거 설치비용은 10조원쯤 드는데 이 같은 정책을 펴려면 시민 동의가 필요하다. 또 구마다 홍수위험지도(floodrisk map)를 만들어 몇 시쯤에는 어느 지역에 비가 어느 정도 오니까 가지 말도록 하는 대응책이 갖춰져야 한다. 해당 지역의 땅값 하락 때문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지만 이제는 도입해야 할 때다.
△방 차장=방재 기준을 상향 조정한다고 해도 그 많은 도시 하수관을 파서 용량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10년, 100년에 한 번 오는 강우량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지역별 강우 강도를 기준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후변화를 반영해 지역별로 차별화된 설계 목표 기준을 정하도록 할 것이다.
△윤 교수=침수흔적도나 홍수위험지도를 만들더라도 지자체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특히 지자체가 앞서 언급된 방재 시스템을 소화하려면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한데 지원이 잘 되지 않는다. 환경이나 치안 같은 이슈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방재 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또 경제 수준이 되더라도 인프라를 갖추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자체와 국토해양부, 소방방재청 등 관련 기관 간 네트워킹이 이뤄져야 한다. 즉 정책의 융·복합이 중요하다. 또 최고통치권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청와대에 방재담당 비서관을 둘 필요성이 있다.
-방재 가이드라인과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윤 교수=수해 원인에는 집착하면서도 피해가 확대되는 과정이나 이를 제어하기 위한 정책적 실패 요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잘 갖지 않는다. 우리는 학습보다는 따끔한 체벌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고 한두 사람의 속죄양을 찾아 ‘분풀이식’ 수습으로 끝내는 때가 많다. 이번에도 단순한 책임공방 또는 민심 추스르기식 봉합으로 끝난다면 방재 후진국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호들갑을 떨다 잊어버리는 단계를 벗어날 때가 됐다.
△정 소장=수해방재 기준을 빈도 개념에서 시간 개념으로 변경해야 한다. 또 대형 건물 등 콘크리트 구조물이 많은 도시의 특성을 감안해 기준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 리스크맵도 새롭게 작성해야 한다. 또 기후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방 차장=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방재 분야에 대한 사항도 의무화할 예정이다. 신축 건물에는 지하 저류시설을 갖추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산에서 밀려 내려오는 토사와 목재를 막아내려면 사방댐을 다수 설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예방·대비·대피 시스템이 동시에 갖춰지는 게 중요하다. 고속도로나 철도는 산을 절개해 만들기 때문에 그런 곳에 센서를 부착해야 한다. 덧붙인다면 땅바닥까지 햇볕이 잘 침투될 수 있도록 수종개선 작업도 필요하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