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정승훈] 한 젊은 소방관의 죽음
입력 2011-08-03 17:54
지난달 27일 강원도 속초시에서 한 젊은이가 숨을 거뒀다. 속초소방서 소속 김종현(29) 소방관은 시내의 한 학원건물 3층에서 로프를 이용해 고양이 포획 구조 활동을 하다 10여m 아래로 추락,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그는 건물 베란다에 고양이가 고립돼 있으니 구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건물 옥상에 설치한 로프에 매달려 구조작업을 하던 중 로프가 끊어지면서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그가 지난 봄 결혼했으며 아내는 임신 중이라는 사실도 전해졌다. 애도를 표하던 많은 네티즌들은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은 지난달 29일 치러졌다.
하지만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국립묘지 안장을 의뢰했지만 인명 구조업무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이 제기돼 심사에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소방대원이 출동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했음에도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소방관의 국립묘지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월 고드름 제거 작업을 위해 출동했다가 추락사한 광주광역시 광산소방서 소속 이석훈(36)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부 일각에서 “재난상황이나 인명 구조 등 소방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당시 이 소방관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지만 아직 김종현 소방관은 편히 쉴 곳을 찾지 못했다. 김 소방관도 명예롭게 영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국회와 정부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개정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현행 법률은 소방공무원의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되려면 ‘화재 진압, 인명 구조 및 구급 업무의 수행 또는 그 현장 상황을 가상한 실습훈련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으로 한정해 놓고 있다. 동물 구조나 고드름 제거 등 긴급 대민지원 요청으로 출동했다 사망할 경우 국립묘지 안장을 놓고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소한 소방공무원이 출동 명령을 받고 임무수행 중 순직했다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시민들은 119 구조대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119 신고횟수를 줄이는 일이다. 부산시 소방본부는 지난 2일 올 상반기(1∼6월) 119신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장난이나 오인, 오접속으로 인한 ‘비재난 신고’ 건수가 51만7149건으로 전년(33만2843건)보다 55.4%나 늘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이 대량 보급되면서 잘못된 번호접촉으로 인한 119 오신고가 급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장난신고는 줄어들고 있지만 스마트폰의 오접속이 더욱 큰 규모로 늘어나 긴급 상황에서 119 출동이 지연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이유다.
긴급 상황이 아닐 경우 119 신고를 최소화하려는 시민의식도 필요하다. 무작정 119 버튼을 누를 게 아니라 간단한 불편 사항은 스스로 처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정작 필요할 때 나와 내 가족이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119 구조대의 도움이 절실할 때가 분명히 닥친다. 2006년 9월 어느 날 밤 아내는 119 구급차를 탔다.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양수가 터졌던 것이다. 남편이 곁에 없던 상태에서 아내에게 119 구조대는 큰 힘이 됐다. 아내는 딸을 무사히 출산한 뒤 허겁지겁 달려간 남편에게 “덜컹거리는 구급차에 누워있는 게 다소 불편했지만 필요할 때 없는 남편보다는 훨씬 든든하더라”고 타박했다.
늦었지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믿음직스런 손을 내밀고 있을 119 구조대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정승훈 특집기획부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