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2011 청풍명월 바둑 축제
입력 2011-08-03 17:40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백우면 경계에 위치한 박달재는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해발 504m에 길이가 500m인 박달재는 구한산과 시랑산이 맞닿아 능선이 사방으로 에워싼 첩첩산중에 있다. 고려의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쳤고, 영남도령 박달이와 금봉낭자의 슬픈 사랑이 전해오는 박달재. 이곳에서 ‘2011 청풍명월 바둑 축제’가 열렸다.
지난 30일 박달재 수련원에서 1박2일로 진행된 이번 축제는 선착순 40팀을 받기로 했지만 신청 팀이 대거 몰려 무려 68팀 350여명이 참가했다. 프로 9단부터 18급까지 다양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들은 5인 1팀을 이뤄 스위스리그로 경합을 펼쳤다. 하지만 이 대회는 승부보다는 수담이 목적으로 바둑결과보다 다른 이벤트의 가산점이 더 높았다.
일례로 대국시간이 길어지면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결정하고 상대의 돌을 잡기보다는 간식으로 주어진 삶은 옥수수에 더 눈길을 주기도 했다. 전국에서 참가한 팀들의 개성도 다양했다. 낙화유수, 빛광회, 낭만기객, 지체장애인으로 구성된 동쪽바다, 팀원들의 나이를 다 합하면 400살이 넘는 봉석기우회, 미래의 바둑꿈나무팀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1년에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청풍명월배는 이번에 더욱 신선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2011 청풍명월 바둑 가요제로 바둑시합보다 점수가 더 높은 이벤트다. 30팀 가까이 참가한 이번 가요제는 프로의 무대를 방불케 했다. 마술사의 매직쇼로 시작된 무대는 MR에 맞춰 노래를 하고, 미리 준비해온 안무, 밸리 댄스, 모창 개인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참가자들도 프로기사, 세 자매, 바둑연구생, 대학동문회 등 10대부터 80대로 세대의 벽을 넘어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축제 그 자체였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가요제의 상품은 옥수수 한 포대, 꿀 한 통, 감자 한 박스, 바둑책 등 모두가 푸짐하게 받아갈 수 있어 순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이틀이 금세 지나고 가요제가 끝난 밤 11시.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둘러앉아 푸짐한 간식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금까지 바둑실력 위주로만 대접받던 시합과는 달랐다. 기력의 차이를 넘어 함께 바둑을 두며, 승부를 초월해 진정 바둑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바둑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기분을 가요제를 통해 호흡을 맞춰 함께 준비하며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 아래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박달재는 바로 무릉도원 그 자체였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