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시간 낭비? 슬럼프 이기는 보약”… 학원 재수생들의 매주 土 영성모임 ‘종로기도회’

입력 2011-08-03 20:48


2012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재학생과는 달리 실패의 경험을 맛본 재수생에게 ‘수능 100일’이란 부담과 긴장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수험생활로 인한 피로는 물론 실패에 대한 아픈 기억과 동년배보다 늦었다는 조바심까지 겹쳐 자칫 실패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촌음도 아껴야 할 이 시기에 기도하기 위해 1일 수련회를 떠난 재수생들이 있다. 30일 서울 연희동 은진교회에서 ‘종로기도회’ 학생들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종로기도회는 1989년 종로학원 재수생들의 큐티모임에서 출발했다. 싸늘한 시선들을 피해 빈 강의실을 전전하며 모였다. 8년 전부터는 종로학원 원장의 배려로 교직원 식당에서 매주 토요일 모이고 있다. 종로기도회는 ‘섬김이’(선배)가 찾아와 성경 말씀을 나누고 후배를 위해 기도해 준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목회자를 초빙해 말씀을 듣는 시간도 갖는다. 섬김이들은 재수생활을 거친 학원 선배들로 자발적으로 후배들에게 간식도 사 주고 힘든 점은 없는지 일일이 챙겨준다. 재수시절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임에 필요한 경비는 선배가 모두 부담한다. 종로기도회의 23년 전통이다. 후배들은 몸만 와서 고충을 토로하고 함께 기도하면 된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심지어 종교가 달라도 상관없다.

선배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신앙을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영욱(32)씨는 자신의 재수경험을 ‘하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시간’으로 정의했다. 김씨는 “대학이나 사회생활에서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재수 시절 만났던 하나님을 떠올리며 이겨냈다”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을 때 얻는,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경험을 후배들이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태욱(27)씨는 “비전 없이 대학만을 위해 공부하다 보면 슬럼프가 오기 마련”이라며 “한 번 실패했다고 조급해 하기보다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부에 찌든 후배들에게 좀 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선배도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종로기도회를 지키고 있는 ‘섬김이 터줏대감’ 조연호(32·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사무국장)씨는 “대학도 중요하지만 최종 목적은 아니다”며 “올바른 비전을 갖고 사회에 기여하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학은 왜 가야 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씨는 “기도는 피로회복제가 아닌 보약”이라며 “남은 기간 ‘반짝 회복’보다는 체질을 개선해 기도로 영육이 튼튼해지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재수생 후배들은 선배들의 이 같은 조언에 깊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홍성모(20·여)씨는 “힘든 시기에 선배들이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게 큰 위로가 된다”며 “나도 대학에 진학해 섬김이로서 후배를 돕고 싶다”고 했다. 윤기웅(19)씨 역시 “고3때 했던 교회활동으로 공부시간이 부족해 재수하는 게 아닐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선배들을 보며 (신앙생활이) 방해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수련회에 참석한 선배들은 제비뽑기를 했다. 남은 수험기간 기도 대상이 될 후배를 선정하기 위한 것이다. 제비뽑기가 끝나면 선배와 후배가 짝지어 기도제목을 나누고, 간절히 기도해준다. 황영은(21·여)씨는 “수능을 두 번 봤는데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며 “고마움도 갚고, 그때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 매주 선배로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종로기도회를 거쳐 간 재수생들은 지금 의료계, 법조계, 교육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모범적인 기독인의 삶을 살고 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