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희조 (1) 어렵던 학창시절 되새겨 장학회 설립

입력 2011-08-03 17:47


나의 학창 시절은 온통 일제(日帝)로 채색돼 있다. 일본인 교사 밑에서 일본 말을 배우고, 일본 아이들과 싸우다시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거기다 집안 형편은 다른 아이들과 매한가지로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배우고 싶은 욕구는 강했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다.

나는 2006년에 ‘이희조장학회’를 설립했다. 평생 회사를 다니며 모았던 돈과 미국의 자녀들이 십시일반 낸 돈을 합쳐 10억원을 내놨다. 적어도 돈 때문에 어린 나이에 꿈의 싹마저 싹둑 잘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많은 학생들을 돕지는 못하겠지만 다만 몇 명이라도 꿈을 꾸도록 돕고 싶었다. 가난한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았다. 특히 농촌 아이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어릴 적엔 ‘이 다음에 먹고 살만 하면 장학회를 만들어 시골의 가난한 학생들을 돕자’는 생각을 가끔 했다.

비록 내가 돈을 댔지만 장학회는 교회가 관리하도록 했다. 그래야 잡음도 없어지고 다양한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이사장은 서울성남교회 배태덕 담임목사가 맡았다. 관리는 교회 교육위원회가 책임졌다.

장학금 수혜 대상은 대학생들의 경우 13∼14명, 고등학생은 4∼5명 정도 된다. 거기엔 한 가지 원칙 아닌 원칙이 있었다. 서울대나 연·고대 같은 소위 명문대생들은 수혜 대상에서 일부러 제외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굳이 이 장학금이 아니더라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 중 별로 유명하지 않은 대학 재학생들, 그중에서도 농어촌 출신들을 주로 대상으로 선정했다.

장학금 수혜 대상은 이들 외에도 교회가 속한 교단 신학교인 한신대와 내가 나온 대전공업전문학교 후신인 한밭대 학생들도 들어 있다. 대학생의 경우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매년 장학금을 지급한다. 장학금은 등록금에 준하는 액수다. 물론 성적이 좋으면서도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이 대상이다.

요즘엔 장학금을 주는 곳이 많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주고, 교회에서도 주고, 대기업 같은 데서도 많이 준다. 그에 비하면 이희조장학회는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사랑과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기도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돈만 주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난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으면 가정도, 민족도 소망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 교육의 방편은 돈도, 지식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은혜로 주신 신앙에 보답하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의 유일한 목표다. 난 평생 군인으로, 경제인으로, 사회인으로 다양한 일을 해왔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내가 없었을 것이란 분명한 경험과 확신이 있다. 거기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먼저 간 아내의 헌신적인 신앙과 사랑이 있었다. 그 세 분의 신앙이 장학회를 있게 했다.

약력=1923년 충남 논산 출생.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미국 포트벨보아 육군공병학교 졸업.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및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 보병 제6사단 공병대대장. 충주비료주식회사 기획이사. 한국에탄올주식회사 기획이사. 한아통상주식회사 대표이사 및 회장. 서울성남교회 원로장로. ‘이희조장학회’ 설립자 및 이사.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