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적합성검사 한시가 급한데 종합병원 “다른데 가봐라”… 동네병원 응급수술 피 마른다

입력 2011-08-02 18:44

경북 안동의 L산부인과의원은 최근 야간 분만 중 응급상황에 빠진 환자를 두고 ‘피 마르는’ 경험을 했다. 자궁 수축이 안 돼 피가 멈추지 않던 산모를 위해 혈액원에서 피를 공급받아 인근 종합병원에 혈액적합성검사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것이다.

산부인과 측은 다른 병원에서도 거부당해 차로 왕복 3시간 거리인 경북 의성의 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가까스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의원 관계자는 2일 “조금만 늦었으면 산모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며 “한 달에 2∼3차례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소규모 병·의원에서 혈액적합성검사 때문에 환자가 위험에 직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보건복지부에 개선책을 건의했지만 아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적합성검사를 피하는 종합병원 이상 대형병원이나 혈액원도 할 말은 있다. 임상병리사를 고용할 수 없는 병·의원은 대형병원이나 혈액원에 검사를 의뢰한다. 하지만 낮은 혈액검사 수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검사를 안 해 주는 종합병원은 점점 늘고 있다. 종합병원은 대개 임상병리사 2∼3명(대학병원은 4∼8명)이 교대로 24시간 근무하는데 1인당 많게는 하루 100샘플씩 검사한다. 일부 병원은 다른 검사까지 병행하는 등 업무 과중에 시달린다. 때문에 외부에서 의뢰한 검사까지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혈액적합성 검사로 병원이 받는 요양급여 수가가 건당 3770원에 불과하고 혈액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부담도 커 대형병원이 검사를 안 해준다”고 전했다. 종합병원 근무 경력이 있는 한 임상병리사는 “적합성검사는 건당 20∼40분 걸리는데 병원은 인건비와 장비 운영비 감당도 어렵다”고 말했다.

혈액원도 적합성검사가 의무가 아닌데다 사고 책임에 대한 우려로 검사를 피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전국에 혈액원 15곳, 혈액공급소 3곳을 운영하지만 적합성검사를 해 주는 곳은 없다. 적십자사는 대신 전국에 검사가 가능한 의료기관 혈액공급소 30곳을 지정·운영한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올해 의료기관 혈액공급소 4곳을 추가하기 위해 해당 지역 종합병원에 검토를 요청했으나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모두 부정적 입장”이라고 했다.

동네 산부인과, 정형외과에서 분만과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존폐를 고민하는 병·의원이 적지 않다. 지방의 한 산부인과병원장은 “정부가 지방에 산부인과를 늘리고 인력을 확충하지만 정작 분만을 기피하는 원인 개선에는 무관심하다”고 꼬집었다. 의사협회 등은 혈액관리법에 혈액원의 적합성검사 의무화 조항 신설, 검사수가 인상, 검사의료기관에 인센티브 제공 등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상 적합성검사의 수가인상은 어렵다”며 “혈액원의 검사 의무화도 전문가의 종합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Key Word-혈액적합성검사

(Cross Matching)=수혈에 지장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환자와 혈액 제공자의 피를 섞어 응집 반응(항원·항체 반응) 발생 여부를 알아보는 검사.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