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와 다른 시리아… 서방국 ‘중동 화약고’ 우려 개입 주저

입력 2011-08-02 21:46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대규모 유혈 진압으로 시리아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독재에 맞선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목숨을 잃은 사람만 2000여명에 이른다. 반정부 시위대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시리아 정부의 강경 진압을 비난하며 강력한 제재 방안을 찾고 있으나 쉽게 뜻이 모이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군사력까지 동원해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리비아 사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피로 물든 시리아, 혼돈의 리비아=2일(현지시간)에도 시리아 정부군은 반정부 시위 중심도시인 하마에 탱크를 동원해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라크 접경도시인 알부카말, 원유 도시인 데이르 에조르시에 80대 이상의 탱크가 진격 중이다. 인권단체 ‘시리아 인권관측소’의 라미 압둘 라흐만은 “(시위대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이슬람권 라마단 전야인 지난달 31일에만 전국적으로 150여명이 숨졌다. 시위가 5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사망자는 2000여명, 실종·감금자는 수만명에 이른다.

리비아는 지난 2월 반정부 세력이 동부 도시 벵가지를 점거한 이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투입됐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반군 최고사령관 압둘 파타 유네스가 반군 내부 세력에 의해 암살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개입 명분과 실리가 부족한 서방=국제사회는 시리아 정부의 유혈 진압에 대해 제재·압박 강화를 촉구하면서도 군사 개입에는 부정적이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1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단독 또는 유엔 차원의 군사 개입은 가능성조차 없다고 밝혔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도 이날 “리비아 군사작전은 유엔의 분명한 위임과 역내 국가들의 지지에 근거한 것”이라며 “시리아는 이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석유 매장 규모 세계 7위인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는 석유가 별로 없다. 이권이 걸려 있지 않다는 뜻이다. 과거 아랍통일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시리아를 건드려봐야 아랍연맹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판단도 있다.

미국에서도 군사 개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적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나 이미 부분적으로 경제 제재가 이뤄지고 있어 파괴력이 적다.

◇속내 다른 주변국=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다른 이유는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다. 주변국과 별 관계가 없는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는 이스라엘·레바논·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현재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체제는 반미를 표방하며 중동에서 균형 잡힌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숄로모 브롬 텔아비브대학 교수는 “시리아가 헤즈볼라, 하마스를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치게 했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과 조용하게 지내왔다. 시리아에서 어떤 정권 교체가 일어나더라도 이런 축이 깨질 수 있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시리아와 긴밀한 관계라 시리아 정부의 강경 진압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란도 예전부터 시리아와 견고한 관계다. 인접국 중 유일한 반(反)시리아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요르단만 국경을 폐쇄하는 등 시리아 정부의 유혈 진압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리비아를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나라는 베네수엘라와 짐바브웨뿐이다. 아랍연맹도 나토군 개입을 찬성한다.

◇국내 사정도 천양지차=영국 일간 가디언은 두 나라는 정권 장악력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리아는 32만5000명의 정규군과 10만명의 준 군병력을 둔 군사 강국이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이 1971년부터 집권하며 닦아놓은 바트당 1당 독재 체제도 확고하다. 시리아인의 74%는 수니파인 데 반해 군부 요직은 이슬람 시아파의 소수 분파인 알라위파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어 정권 충성도가 높다. 인구 150명당 1명꼴인 비밀사복경찰 무카바라트의 존재 역시 독재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한몫한다.

반면 리비아는 부족 간 권력다툼이 치열하다. 카다피는 그동안 부족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통치를 유지해 왔다. 반정부 세력이 빠른 속도로 주요 도시를 점거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부족의 힘이었다.

한승주 양지선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