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목회자 아내 20년… 당신은 온달, 난 평강공주”

입력 2011-08-02 17:58


‘사모, 평강공주를 꿈꾸다’ 펴낸 부산제일영도교회 장형윤 사모

국내에는 목회자 수만큼 사모가 있을 터이다. 2011년 한국교회에서 사모의 풍경은 어떠한가? 사모는 그림자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드러낼 수 없다. 가슴에 품은 열정을 애써 눌러야 하는 사모들이 얼마나 많을까. 더구나 지금은 ‘여성시대’인데….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들 목회의 절반 때론 그 이상을 사모가 담당했다고 말한다. 드러나지 않지만 목회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사모인 것이다.

장형윤(45) 사모는 부산제일영도교회 고혜석(51) 목사의 아내다. ‘목사의 아내’로 20년 동안 지내왔다. 장 사모는 최근 ‘사모, 평강공주를 꿈꾸다’(쿰란)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사모여, 목회 플래너가 되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 표지에 있는 ‘목회 현장의 사모가 다룬 최초의 사모론’이라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30일 부산제일영도교회에서 장 사모와 고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부산대 국어국문과와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장 사모는 한 기독월간지에 ‘교회 내 사모의 성공적 사역의 사례’라는 주제로 글을 써 왔다. 어느 새벽기도 시간에 불현듯 목회 플래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웨딩 플래너가 필요하듯, 목사에게도 전문적인 견해를 제시해 주는 목회 플래너가 절실하다. 장 사모는 사모야말로 가장 훌륭한 목회 플래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목회 들러리’가 아니라 목회자를 격려하는 동시에 적절한 조언을 해주며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야말로 사모의 중요한 역할임을 깨달았다.

이 책에는 목회 플래너가 되기 위해 사모에게 필요한 것들이 조목조목 제시되어 있다. 장 사모는 교회와 가정, 하나님 앞에서 사모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글로 남겼다. 전체적으로는 사모를 위한 자기계발서 성격이 강하다. ‘사모여, 프로가 돼라’부터 ‘리더가 돼라’ ‘당당하라’ ‘바다가 돼라’ ‘재정관리를 잘하라’ 등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사모로 부름받은 순간부터 사모 역할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제 나름의 사모관을 갖고 남편 목회를 도왔습니다. 대부분 사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고통과 시행착오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들의 목회는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장 사모는 고 목사가 대구대현교회를 담임하던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목회에 참여했다. 고 목사는 ‘사모는 어머니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는 지도자’라며 사모가 단순히 목사의 아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닌 역량을 지혜롭게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에 장 사모를 동역자로 활용할 것을 공식 제안, 당회의 허락을 받았다. 장 사모는 제자 훈련과 심방 파트를 맡았다. 물론 무보수였다. 부임 초 200여명의 성도가 있던 50년 전통의 대현교회는 이들이 지난해 부산제일영도교회로 떠날 때 450여명으로 성장했다.

“남편이 목회는 함께해야 한다며 ‘사모의 자리’를 내어 준 것이 큰 힘이 됐지요. 사모는 최고의 능력을 갖추면서도 가장 많이 희생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모야말로 예수님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장 사모는 역량 있는 사모들이 조용히 묻혀 지내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런 분들을 돕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목회 플래너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목회자를 보필하는 것이 지금 시대 사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교회에서 열리는 각종 사모 세미나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사모들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키워 줄 수 있는 세미나가 필요합니다. 이제 사모 세미나도 한풀이식으로 울고 위로받는 차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장 사모는 ‘사모 해방론자’가 아니었다. 남편을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철저히 목회자를 보필하는 측면에서 그녀는 전통적인 사모였다. 그러나 평강공주와 같이 남편의 건강하고 훌륭한 목회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점에서 분명 새로운 길을 가는 사모였다. 함께 이 땅에 교회를 세우는 길을 걷고 있는 고 목사 부부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부산=글·사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