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생 질병을 영광으로 바꾼 하용조 목사

입력 2011-08-02 17:51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가 2일 별세했다. 향(享) 65세의 일기(一期)는 짧고 애석한 것이겠으되, 우리는 하 목사의 삶을 그런 안타까움을 넘어선 지점에서 기린다. 그는 평생의 가시인 질병을 복음의 영광으로 바꾼 목회자요, 그가 맺은 목회의 결실은 교회에 대한 안티가 늘어나는 시절일수록 더욱 도저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 목사의 투병생활은 청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3학년 여름수양회에서 폐결핵이 발견된 이후 군 복무 중 폐결핵 재발, 당뇨·고혈압·신부전증 등 간난과 신고 속에서 살았다. 1주일에 3번씩 투석해야 했고, 지금까지 암 수술을 7번이나 받았다. 그럼에도 하 목사는 혈압이 내려가 중도에 단상에서 내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설교를 거르지 않았고, 육신의 안일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연예인교회를 개척할 당시인 30세 무렵부터 하루 4시간씩 자고 7번 설교하며 목회를 했다. 연예인교회가 부흥되고 성전이 완공될 무렵 간경화로 물러났지만 쉬기보다는 일감을 찾아냈다. 그런 과정에서 탄생시킨 것이 두란노서원과 온누리교회다. 바이블칼리지,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천만큐티사역, 천만일대일사역 등 그가 구축한 목회 패러다임은 한국교회의 귀중한 목회 자산으로 꼽히고 있다. 2006년 요양 차 일본으로 갔을 때도 ‘러브소나타’라는 전도 집회를 고안해 한류와 결합한 문화선교모델을 제시했다. 2007년 ‘러브소나타’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에게 세례해 준 일화는 근년 중 기독교계의 돋보이는 뉴스로 꼽힌다.

평소 하 목사는 사도행전적 교회, 즉 어디에 어떤 존재로 있든 선교를 지향하는 목회를 꿈꿔왔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관성에 의해 빗나갈 수 있는 교회와 목회활동을 본질로,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힘써왔다. 그가 1980년 간경화로 인해 휴식 차 영국에 갔다가 큰 영향을 받아 평생의 멘토로 섬긴 복음주의의 거장 존 스토트 목사(1921∼2011)가 꼭 1주일 전에 타계했다. 스토트 목사는 한국의 목회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목사로 꼽는 사람이다. 스승과 제자의 말년이 공히 선연하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