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通美封南과 집단사고

입력 2011-08-02 17:42


지난달 28일 밤 10시 반, 뉴욕 맨해튼의 밀레니엄 유엔플라자 호텔 앞.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기분은 아주 좋아보였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저녁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는 첫 날 북·미 회담 결과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잘∼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오전과 오후의 5시간 공식 회담, 4시간 가까운 만찬. 양측은 할 말을 다 했고, 서로의 생각도 읽었다. 둘째 날(29일) 두 시간의 오전 회담과 오찬으로 일정을 마친 양측은 “건설적이었다”는 공통된 평가를 내놓았다. 1년 7개월 만의 북·미 고위급 공식 회담은 그렇게 끝났다.

통미봉남(通美封南). 남북관계나 대미외교를 다루는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다. 북한 시각에서 보는 일종의 왕따 개념이다.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대미 전략이긴 하지만, 한국 내부에서는 남북외교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계관의 불콰해진 얼굴은 통미봉남이라는 메커니즘이 다시금 슬금슬금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 발리 회담에서 북한은 남한을 싸늘하게 대했다. 반면 북·미회담이 끝나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 속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무엇인가 빨리 진전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병행시키자는 입장이다”고 강조했다.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미국은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전제를 깔면서도, 향후 지속적인 북·미대화 의지를 나타냈다. 남한과 북한, 미국 반응의 미묘한 차이에서 북한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적 구도에서의 통미봉남이 느껴진다.

뉴욕 북·미회담 기간 중 외교부의 북핵외교기획단장이 아주 짧게 미국을 다녀갔다. 좋게 해석하자면 긴밀한 한·미조율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듯싶다. 현장에서 회담 내용을 상세히 들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남한이 이니셔티브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미동맹 관계는 유례없이 돈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미국은 한국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줬다. 빚이라면 빚이다. 그런 미국이 이제는 북한과 대화를 좀 하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한국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 남북관계에서 지렛대를 거의 잃어버린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북·미대화의 진전은 현실적으로 통미봉남의 구도로 간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세계 전략, 동북아 관리, ‘핵없는 세상’ 정책 등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이 같은 한반도 정책은 이미 보통 사람이라도 예견할 정도로 자명한 것이었다. 아마도 통미봉남 구도가 심화될수록, 우리 당국자들 입에서는 긴밀한 한·미조율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될 것이다.

통미봉남 구도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크다. 초기부터 정권 내부에서는 남북관계에 관한 한 집단사고(group think)가 지배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비판적 토론 없이, ‘우리’라는 의식 속에서, 다른 의견에 배타적인 태도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한 유연성 있는 정책 대응은 검토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물론 천안함 연평도 도발로 집단사고가 더욱 강고해진 점도 있다. 학자들은 1961년 존 F 케네디 정부의 피그만 침공 작전 실패, 2001년 중앙정보국(CIA)의 9·11 예측 실패 등을 집단사고의 결과로 규정한다.

남북대화를 주도해야 할 통일부는 이미 존재감을 상실했고, 남북 비핵화 회담과 대미외교는 외교부가 독점하고 있다.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2012년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가 꿈틀대고 있다. 이런 시점에 집단사고는 대실패를 예고한다. 한반도 정세의 변곡점이라고 판단된다면 통일외교 라인의 재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