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뚱어·농게 합창에∼ 느리고 불편했던 4년이 ‘사르르’

입력 2011-08-02 17:36


2007년 ‘슬로시티’ 지정 신안군 증도의 희망과 과제

“느리고 불편해도 관광객은 늘어난다.” 치타슬로(cittaslow·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 등 4개 도시에서 시작된 전통보존과 생태주의에 바탕을 둔 국제적 환경운동이다. 빠름과 경쟁보다 느림의 가치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전남 신안군 증도, 완도군 청산도, 충남 예산군 대흥면, 경북 청송군 파천면 등 10개 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슬로시티가 전시행정 탓에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다. 증도의 경우 차량과 쓰레기 증가, 무분별한 간판 설치, 외지인에 의한 난개발, 신축 건물 증가 등 슬로시티와 어울리지 않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휴가철 성수기를 맞은 슬로시티 증도를 찾아봤다.

“뽁뽁, 꼬르르르….” 글로 옮기기 어려운 소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대초리의 드넓은 갯벌은 한여름 생명의 함성으로 시끄러울 정도다. 30일 오전 섬 속의 섬인 화도로 이어지는 1.2㎞의 노두(露頭)길 위에서였다. 노두는 갯벌 위에 돌을 놓아 건너다니던 징검다리.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한 게는 사람이 오면 구멍 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짱뚱어는 물을 튕기며 폴짝 폴짝 뛰거나 기어 다닌다. 수많은 농게와 백합도 보였다. 신안갯벌센터 유영업 관장은 “칠게, 달랑게, 붉은발사각게, 맛조개, 말뚝망둥어 등 국내 갯벌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이 관찰된다”고 말했다. 특히 흰발농게는 국내에서 사라져가는 종이다.

◇섬갯벌축제와 3무(無)의 섬=슬로시티 증도는 마침 휴가철을 맞아 섬갯벌축제가 한창이다. 29∼31일 짱뚱어해수욕장에서 펼쳐진 축제에는 관광객 8만여명이 다녀갔다. 백합체험, 백사장 뒤 4㎞의 송림숲 걷기, 삿대와 개매기 체험, 소금포대 쌓기 등의 행사가 펼쳐졌다. 개매기는 밀물 때 밀려든 물고기가 썰물 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도록 갯고랑에 쳐놓는 그물을 말한다.

신안군 윤근학 문화관광과장은 “6년째인 올해 축제에서는 마을 주민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준비했다”면서 “어느 해보다 더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29일 오후부터는 차량이 밀려들어 교통체증도 빚어졌지만 혼란은 없었다.

증도는 담뱃가게, 공해, 자동차가 없는 삼무(無)의 섬을 선포하고 추진 중이다. 담뱃가게가 사라져 섬 안에서의 금연은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섬 주민 90%가 교인이어서 비교적 쉽게 금연을 했다. 그러나 관광객 중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증도대교 개통 이후 쓰레기도 늘었다. 지난해 8월 한 달에만 버려진 쓰레기 청소에 3개월이 걸렸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관광객에게 20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해 쓰레기를 가지고 오면 1000원을 환불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없는 섬’과 ‘자전거의 섬’은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잡으려 하지 말고 그냥 듣고 보세요”=인구 2150명의 섬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2008년 갯벌도립공원, 2009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10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증도 갯벌 보전지역 가운데 핵심 지역에는 들어가거나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다. 이번 축제기간 중에도 짱뚱어다리 바로 아래 갯벌과 백합 양식장 일부 등 완충지대와 전이지역만 개방됐다.

그러나 지난해 증도를 찾은 관광객은 80만명을 넘어섰다. 관광객이 대거 갯벌에 들어가니 짓이겨지고 훼손되지만, 이들을 제어하기는 어렵다. “도시 사람들은 갯벌에 오면 농게와 짱뚱어를 잡으려고만 하지만 노두길이나 짱뚱어다리에서 귀 기울이면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망원경을 가져오면 멀리서 그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도 있다.” 29일 축제 행사장인 짱뚱어해수욕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김모(전남 목포시 유달동)씨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3년 전에도 이곳에 왔는데 당시에는 짱뚱어다리 밑에 갯벌이 무릎 위까지 빠질 정도로 고운 뻘이었지만 지금은 발목까지밖에 안 빠진다”고 말했다.

대초리 화도 일대 갯벌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가운데서도 핵심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화도에서 숙박업을 하는 안미영씨는 “심지어 무안에서 트럭을 타고 와서 짱뚱어를 잡아가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화도 남단 갯벌은 벌써 모래갯벌이 됐다”면서 “관광객은 짱뚱어 뛰어다니는 것을 보려고 오는데 갯벌이 훼손되면 끝장”이라고 호소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휴양지=“놀거리가 없네요.” “아니 얼마나 노시려구요?” 증도에 워터파크나 놀이기구는 없지만, 소금과 아름다운 낙조와 별이 빛나는 밤이 있다. 신안갯벌센터 유 관장은 “관광객이 와서 놀것이 없다고 푸념하면 증도는 그냥 쉬어가는 곳이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29일에도 구름이 조금 있는 편이긴 했지만 대체로 맑아서 낙조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밤에는 어김없이 별이 쏟아졌다.

슬로시티가 되기 위해서는 인구 5만명 이하여야 한다. 전통산업, 슬로푸드 및 아름다운 경관이 있어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를 쓰고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대형 체인점과 패스트푸드점을 거부해야 한다. 증도는 이 가운데 친환경 에너지와 자전거도로 활성화 외에는 조건을 두루 갖췄다. 유 관장은 “2009년 친환경 농업지구 지정과 친환경 세제 보급으로 우렁이 개구리 가물치 미꾸라지 등의 개체수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안미영 전 대초리 이장은 “화도가 관광명소가 됐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싫다는 반응도 많다”면서 “산을 깎거나 땅을 메워 큰 호텔이나 펜션을 지으려고 하기보다 갯벌, 바다와 함께해 온 주민들이 살아온 터전과 환경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안=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