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의 "나는 목사다"

입력 2011-08-02 09:46


[미션라이프] 유진 피터슨의 자서전인 ‘유진 피터슨: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IVP)은 501 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이다. 이 바쁜 시기에 한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효용성 측면에서는 낭비일지 모른다. 그런데 책을 정독하고, 수많은 메모까지 한 이후 이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의 목사들, 또한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목사 예비군들, 목사의 아내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목사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목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목사는 무엇을 고민하며 생각하고 있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은 누구인가. 그는 목사다. 교수와 탁월한 작가이지만 목사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다. 목사로 기억되기 원한다. 성경을 현대어로 번역한 ‘메시지’를 비롯해 ‘한 길 가는 순례자’‘그 길을 걸어라’‘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등 수많은 책을 썼다. 올해 79세. ‘영성의 거장’으로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성가가 높다. 그에게는 ‘목회자의 목사’라는 별칭이 붙는다. 책은 그가 어떻게 목사로 빚어졌는지, 목사라는 소명이 어떻게 자신을 빚어 왔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1932년 미국 워싱턴의 이스트 스탠우드에서 태어나 몬태나주의 칼리스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피터슨은 1958년 미국장로교단(PCUSA)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물론 그 사이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에서 철학을, 뉴욕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등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안수를 받았다고 ‘어느날 갑자기’ 목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목사라고 불린다고 목사는 아니었다. 59년부터 61년까지 그와 아내 잰 사모는 치열하게 목사와 목사 아내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며 ‘목사라는 소명’의 탄생을 기다렸다. 그 3년은 잉태의 기간이었다. 결국 가르치는 일과 교회의 일, 결혼 등이 합해져서 피터슨 부부에게 목사의 소명이 낳아졌다.

“어느 시점엔가 양수가 터졌다. 우리는 목사와 목사의 아내로 태어났다. 목사가 내게 소명이 되었던 것처럼 목사의 아내도 잰에게 소명이 되었다. 목사는 내게 부르심이었고, 내 인생의 모든 조각의 합, 곧 소명이었다.”

이 책 전체에는 ‘목사가 누구인지’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목사는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사람들 사이,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공동체 안에 세워진 사람이다. 목사가 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언제나 인격적이고 쉬지 않는 기도의 일이야말로 목사의 일이다. 목사는 소명이지 결코 직업이 아니다. 그는 다소 격정적으로 강조한다. “나는 목사로 고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목사의 일차적 책임은 내가 섬기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1962년부터 메릴랜드에 ‘그리스도우리왕장로교회’를 개척, 30년간 사역했다. 교회란 무엇인가. 피터슨 목사는 교회를 ‘죽음의 나라에 세워진 하늘의 식민지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게 하는 성령의 전략’이라고 정의한다. 교회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었다. 그의 이 말이 특히 와 닿는다. “목사에게 맡겨진 영혼에게는 이하동문(以下同文)이 없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귀하고 특별한 존재다. 거기에는 ‘신사 숙녀’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처받아 울부짖는 사람들도 그득했다. “나는 사자 굴에 갇힌 사람들, 콜로세움에서 맹수들과 마주하는 남자와 여자들의 목사였다.”

다양한 회중들과 함께하는 목사로서 피터슨에게 주어진 과업은 ‘오늘’이라고 하는 이 시간에, ‘여기’라고 하는 이 장소에서 복음을 실제로 ‘살아내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인내하며, 인격적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목회였다. 물론 목사는 먼저 복음을 현장에서 ‘살아내어야’ 했다.

회중과의 관계에서 목회는 ‘목사 자신이 주목 받으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려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고백은 울림이 있다. “목사로서 내게 하나님이 그들(성도)의 인생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들의 인생에 행하시는 일을 볼 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에서 하시는 일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고 싶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잘했는지 평가하고 성적표를 내주는 학교 선생님이 아닙니다. 목사는 공동체 안에서 유일하게 자기 마음껏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봐 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가지는 존엄성을 회복해 주는 사람입니다.”

책 속에는 소위 미국식의 소비주의 문화에 빠져버린 교회와 목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회중의 미국화’, 그리고 ‘성공주의 목회’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한다. “나는 이 ‘빌어먹을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도권 안의 종교직업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느냐 무시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요. 간단히 말해서 소비자 중심이고 명성 중심인 미국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보상받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이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언어의 이야기, 책 읽기와 글쓰기, 멘토, 일터교회, 평신도 신학 등이 깊숙하게 다뤄지고 있다. 하나하나 음미해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주제들이다. 또한 목회자에게 안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잘 기술되어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밑줄을 그어야 했다.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학적 성찰과 풍성한 이야기가 저자의 경험, 책들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목회자들을 격려하기도, 아프게도 한다. ‘목사는 다른 것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소명자’라는 그의 말은 종교 시장이 무너진 이 불신의 시대를 살아내어야 하는 목사들의 고개를 번쩍 들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초기 지녔던 목사로서의 소명감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엷어지고 어느덧 소비주의 종교에 함몰되어버린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쓰라린 일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목사(진정한 목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발견하며 가슴이 뜨뜻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에게는 더욱 절절하게 다가가리라. 목사라는 단어에서 어떠한 경외감도 찾을 수 없이 권위가 땅에 떨어진 이 시기에 유진 피터슨의 “나는 목사다! 너도 역시 목사다!”라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좋은 책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