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입력 2011-08-01 21:44
부채증액 협상 타결… 워싱턴 정계 득실계산
미국의 채무한도 증액 협상 타결은 대선을 1년3개월 앞둔 미 정계 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공화당이 협상에서 승리한 모양새여서 버락 오바마(사진) 대통령이 재선에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국가적 재앙을 막기 위해 뜻을 굽힌 오바마가 부동층의 표심을 사로잡았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오바마 승자인가 패자인가=오바마는 협상 내내 이른바 ‘부자 증세’를 강조했다. 비행기를 소유한 기업, 석유회사, 헤지펀드 등에서 세금을 더 걷어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뜻은 ‘합의안’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의회에서 구성될 특별위원회가 증세를 논의한다는 내용이 합의에 들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 특위의 기본 임무는 재정적자 감축이다. 미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완전히 항복했다”고 표현했다.
따라서 오바마를 지지해 온 유권자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그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NYT는 “오바마가 하원 공화당 압력에 밀려 우측으로 움직였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내부 균열이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합의안에 따라 사회복지 예산이 축소되면 저소득층의 오바마에 대한 실망감도 커질 것이다.
반면 오바마가 실익을 챙겼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피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며, 오바마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희생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그에게 점차 등을 돌리고 있는 부동층 유권자를 붙잡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오바마 재선 캠프의 핵심 타깃은 이념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부동층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는 게 오히려 이기는 전략일 수 있다”며 “오바마의 행동이 눈에 보이지 않은 비밀행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무한도를 비교적 충분히 늘려 2012년 대선 전까지는 재정적자 문제로 공화당과 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낮아진 것도 오바마에게는 큰 이익이다.
◇티 파티와 매코넬의 승리=공화당 내 강경 보수세력인 ‘티 파티’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언론들은 티 파티를 협상의 최대 승리자로 부른다. 공화당이 협상에서 물러설 수 없었던 이유는 티 파티가 공화당 지도부를 뒤에서 압박했기 때문이다.
티 파티는 협상 과정 내내 증세 반대와 재정적자 감축 규모 확대를 주장했다. 지난주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장이 자신의 안을 하원에서 표결에 부치려다 한 차례 연기한 것도 티 파티 의원들이 표결 불참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티 파티는 1일 하원 표결에서도 합의에 반발해 대거 이탈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한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해결사’ 능력을 인정받았다. WP는 매코넬이 “미 프로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구원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처럼 막판에 등장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협상으로 손해를 본 사람은 티 파티에 휘둘린 베이너 하원의장이다. 합의에 기초가 된 베이너 안을 구상하는 등 공로가 있지만 당내에서부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 10대 여성과 성관계 스캔들이 불거진 대만계 데이비드 우 하원의원은 협상 기간 여론의 비난이 최소화돼 또 다른 수혜자로 꼽힌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