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채무협상 극적타결 주역은 협상력 아닌 ‘디폴트 데드라인’
입력 2011-08-01 22:08
지난 몇 개월 동안 전 세계 금융시장을 짓눌러 왔던 미국 연방정부 채무한도 상한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미국은 일단 국가부도(디폴트) 사태를 피하게 됐다.
지리했던 정치권의 채무한도 논쟁은 지난 4월 초부터 시작됐다. 당시 연방정부 폐쇄 직전에 ‘2011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통과시킨 정치권은 또다시 국가부도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음에도, 당파적 입장에 따라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지난 주말을 포함해 수 주 동안 백악관은 협상장으로 활용됐다. 하원은 7월 중으로 예정됐던 휴회기간을 철회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지난달 몇 차례 협상 끝에 합의안을 마련했으나, 의원들이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폐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양당 지도부는 정치력에 상처를 입었다. 국가 재앙이 다가오는데 당파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당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상처뿐인 타협’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사건건 당파적 싸움만 벌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세금인상 논쟁이 미국 내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번 협상이 극적 타결된 주요 원인은 양측의 협상력이 아니라 ‘마감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결국 마감시간 이틀 전에 양측이 그동안의 주장을 한데 모아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합의안은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및 공화당의 의견을 두루 반영하는 한편, 이들이 각각 강력히 반대하는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아 충돌을 피했다.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년 대선 이후까지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채무한도를 높이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특별위원회가 합의하지 않으면 세율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으로서도 특별위원회에서 합의되지 않으면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 예산이 추가 삭감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반대했던 단계적 채무한도 증액 방식이 채택된 데다, 부유층 세금인상안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합의로 정부 지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가뜩이나 부진한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채무한도 증액보다 재정적자 감축 규모가 더 많아야 한다는 족쇄를 달아 놓은 점은 향후 경기 부양을 위한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 것임을 예고한다.
또 민주당과 공화당은 오는 10월부터 올해 말까지 균형예산수정법을 마련해야 하는 등 재정 감축안이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사안이라는 점에서 합의 내용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회사들은 신중한 자세다. 아직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어 신용등급 강등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