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소비자가격 붙은 제품은 몇 안됐다
입력 2011-08-01 18:28
1일 오후 서울 한강로동 한 대형 할인마트 라면 코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권장소비자가격이 표시된 라면은 두 종류에 불과했지만 그마저도 글씨가 작아 소비자들이 알아보기에 쉽지 않았다. 할인행사 가격은 지난달과 다르지 않았다.
공덕동에서 이 마트를 찾은 주부 김주희(43)씨는 권장소비자가격에 대해 묻자 “표시된 줄 모르고 확인도 안 해보고 집었다”고 말했다. 다섯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시장을 보러 나온 윤영진(35·여)씨는 “오늘부터 가격이 표시된다고 들은 적은 있다”며 “할인마트 가격도 오르나 했는데 행사 가격이 그대로 붙어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1일부터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빙과류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도록 권고했지만 이날 권장소비가자격이 붙은 제품을 진열해 놓은 곳은 대형 할인마트 몇 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6월 가격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한 정부의 지침 탓에 식품업체들이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심은 전체 라면 제품 90여종의 권장소비자가격을 제일 먼저 내놓았다. ‘신라면’ 730원, ‘안성탕면’ 650원, ‘너구리’ 800원 등 지난해 6월과 같은 가격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농심에서 지난 4월 ‘라면에 설렁탕의 영양을 담았다’는 광고와 함께 선보인 신라면 블랙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품의 광고가 과장됐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신라면 블랙의 권장소비자가격은 1600원으로 책정됐다. 편의점에서 1700원에 판매하던 것에 비하면 소폭 내렸지만 대형 할인마트에서 1320∼1340원 수준으로 팔리던 것에 비하면 많이 오른 셈이다. 농심 관계자는 “공정위는 과장·허위 광고 부분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지 가격에 대해 지적한 게 아니다”며 “공정위 권고를 수용한 것은 기준이 된 설렁탕의 ‘영양 표준치’에 대해 우리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들은 가격 책정을 두고 ‘눈치 보기’ 중이다. 특히 제과류는 재료 값 인상으로 지난 5월 한 차례 출고 가격을 올려놓은 탓에 지난해 6월 가격 수준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하면 가격을 다시 내리게 되는 상황이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6월과 비교해 가격이 오른 제품도 있어 다시 지난해 가격으로 내릴지 그대로 권장소비자가격으로 내놓을지 조율 중”이라며 “재료 값이 오른 상황에서 정말 난감하지만 정부 방침을 따라야지 어쩌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일부 제품에 대해 소비자권장가격을 표시하도록 해도 소비자들에게 체감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편의점이나 소형 슈퍼에서는 권장소비자가격대로 판매하게 되지만 가격 경쟁이 치열한 대형 할인마트는 가격을 이전과 같이 유지하기 때문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