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 경비원 없이 개만 있다면… 일단 부실 의심” 은행들 자체 대출 심의 강화
입력 2011-08-01 18:16
“회사 공장에 경비원이 없고 개만 풀어놓았다면 일단 의심해야 합니다.”
기업 여신 관리에 대한 우리은행 한 지점장의 첫마디는 개와 경비원과의 상관관계였다. 경비원 같은 필요인력조차 없다면 회사가 보안에 전혀 신경을 안 쓸뿐더러 투자에 인색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대출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옥석 고르기’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로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확대할 수밖에 없지만, 대외변수에 취약한 중소기업계의 부실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실기업’ 관리는 명확한 매뉴얼이 없어 각자 노하우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은행들로서는 자체 심의 강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은행 사이에서는 1977년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기억장치 제조업체로 출발, 2006년 7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은 A사가 부실기업 대출의 뼈아픈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A사는 2000년 코스닥에 등록했고 이후 미국 중국 태국에 현지법인도 설립했다. 1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이 회사에 2006년까지 시중은행 5곳이 제공한 여신은 모두 316억원.
A사는 2009년 해외 금광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다. 그해 3월 해외 계약 체결 소식에 주가는 상한가를 치며 급등했지만 불과 3개월 뒤 계약 해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어 200억원대 규모의 유상증자 실패, 지난해 말 상장 폐지 순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A사가 부실화된 2006∼2009년 사이 여신을 회수한 곳은 5개 은행 중 단 2곳뿐이었다. 오히려 한 대형 은행은 여신 규모를 배 이상 확대하기도 했다. 2009년 7월 이 기업의 5개 은행 여신은 376억원으로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공격적인 기업대출 확대로 지난해 업계 2위의 호성적을 거둔 기업은행 김규태 전무는 1일 “‘절벽 부도’를 막지 못할 경우 지점장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절벽 부도란 멀쩡해보이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는 상황을 빗댄 단어다. 김 전무는 “기업의 부실 징후는 지점에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벽 부도’가 난다는 것은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라며 “만약 부도난 회사 대표가 중국으로 ‘야반도주’할 것 같으면 지점장이 자기 휴대전화를 줘서라도 연락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점장들의 역량이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란 의미다.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기업 부실화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외부 회계감사 의견, 이자보상배율(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기 위한 지표) 등 드러나는 수치가 주를 이룬다. 반면 각 은행의 노하우가 집결된 숨겨진 항목들도 있다.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 재무·경리 담당 임원이 교체되거나 비밀 간부회의가 늘어난다면 모종의 ‘금융사고’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회식자리에서 직원들이 자주 회사를 비판하고, 사내 게시판에 직원들의 불평이 자주 올라온다면 일단 ‘징조’가 수상하다. 사장이 자리를 비웠는데 비서가 행방을 모르는 경우가 잦은 업체들도 대출 요주의 대상으로 꼽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불쑥 회사를 방문했을 때 ‘왜 지점장이 연락도 없이 오느냐’고 역정을 낸다면 오히려 더 수상한 경우가 많다”면서 “일단 돈을 빌려주면 은행이 ‘을(乙)’이 되는 만큼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상태를 점검한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