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용웅] 시장의 악덕 담합꾼들
입력 2011-08-01 17:43
노름꾼들이 서로 짜고 고스톱을 치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서로 짠 도박꾼만 돈을 따고 상대방에 홀려 도박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억울할 뿐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 판을 치고 있다. 바로 대기업들의 가격담합행위다. 대기업들은 시장 과점을 이용해 서로 짜고 제품가격을 올리는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고 있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이익 챙기기에만 바쁘다. 이들은 가격을 올리더라도 소비자들이 어쩔 수 없이 자기회사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다. 소비자들은 이들이 짜고 논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머니 돈을 털어내야 한다. 시장에는 이들 기업 제품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선량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완전 박탈하고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입만 벙긋하면 시장경제 운운한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최근 8개월 사이에 가격담합행위로 서너 차례나 적발됐다. 이들은 서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유 치즈 등 국내 유제품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업체다. 이들이 짜고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은 선택의 방법이 없다. 바로 이 점을 노리고 가격담합을 밥 먹듯 했다. 남양유업은 작년 12월에는 우유, 올해 6월에는 치즈, 지난달에는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컵 커피 가격 담합으로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 145억2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남양유업은 가격담합뿐 아니라 리베이트 제공, 허위·과대광고 등 각종 불공정행위를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매일유업 역시 남양유업과 함께 우유와 치즈, 컵 커피 가격 담합에 가담해 120억3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고 지난 2월에는 정식품 등과 함께 두유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17억원의 과징금을 추징당했다. 한 업체가 단시일 안에 이처럼 많은 가격담합행위를 하다 적발된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불공정 거래의 ‘달인’으로 꼽힐 만하다.
정유사와 가스 공급업체들의 횡포도 만만치 않다. SK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개 정유사는 11년간 ‘주유소 나눠먹기’ 담합을 벌인 혐의로 지난 5월 4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액화석유가스(LPG)까지 공급하고 있는 SK가스와 SK에너지, GS칼텍스, E1,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6개사는 2009년 12월 담합혐의가 적발돼 무려 66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 과징금은 사상 최대액수다. 이들은 2003년부터 6년간 LPG 충전소 가격을 짜고 판매하다 공정위에 걸렸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소송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소송을 하면 과징금이 줄어든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시장의 악덕 담합꾼들은 정부당국에 겁도 내지 않는다. 담합하다 적발되면 소송해서 과징금을 줄이면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짜고 제품가격을 올려 벌어들인 이익이 과징금보다 훨씬 많으니 손해 볼 게 없다는 식이다. 대기업들의 가격담합행위가 끊이질 않는 이유다. 공정위의 느슨한 처벌도 문제다.
지난해 공정위에 적발된 불공정행위 3505건 중 과징금 부과는 66건, 검찰 고발건수는 19건에 불과했다. 2009년 과징금 부과 78건, 검찰고발 43건에 비해 크게 줄었다. 가격담합행위를 하는 대기업들은 사기도박꾼보다 더 악질적으로 다뤄야 한다. 과징금도 많이 물리고 검찰고발도 과감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을 원상회복토록 해야 한다.
신라면 블랙을 내놓은 농심은 최근 표시광고법상 허위과장표시 및 광고행위로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라면가격은 그대로 받고 있다. 다른 업체들도 이런 경우가 많다. 정부가 대기업의 가격담합행위를 적발했다고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대기업의 악덕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이용웅 선임기자 y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