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정원교] 중국 도처에 ‘文明’ 넘치지만…
입력 2011-07-31 19:29
지금 중국에서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는 뭘까. 단연 ‘원밍(文明)’이지 싶다. 아파트 단지에서 큰 길로 나가면 원밍은 온 사방에 널려 있다. 육교 난간에도, 가로등 기둥에도, 건물 벽이나 담장에도.
“올림픽 표준을 견지하면서 우리 구(區)의 모든 힘을 합해 전국적인 문명 지역을 만들자(堅持奧運標準 擧全區之力 創建全國文明城區).” 육교 난간에 걸어놓은 플래카드에 적힌 글귀다.
가로등 기둥에는 “서로 손잡고 문명 도시를 함께 만들자. 매력적인 새 차오양(朝陽)구를 품에 껴안자(携手共創文明城 擁抱魅力新朝陽)”라고 쓴 천이 세로로 걸려 있다. ‘원밍 차오양(文明 朝陽)’이란 표현은 길 옆 허름한 건물 벽이나 담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차오양구만 유난을 떠는 것도 아니다. “문명적인 말을 하고 문명적인 일을 하고 문명적이고 예의 있는 베이징 시민이 되자(說文明話 辦文明事 做文明有禮的北京人).” 베이징 시내 육교 난간에 걸린 구호다. ‘원밍 서후이(文明 社會)’나 ‘원밍 궈자(文明 國家)’는 이미 일상용어가 됐다.
이들이 말하는 원밍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중중(中中)사전은 원밍을 “사회가 발전해 비교적 높은 단계에 도달하고, 비교적 높은 문화를 갖추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문명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이들은 왜 이렇게 원밍에 집착하는 것일까.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덥다고 웃통을 벗어젖힌 채 활보하는 사내들, 천연덕스럽게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중앙선을 무시하고 유턴하는 차량들, 지하철역 계단에 널린 쓰레기들….
G2 국가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유가 뭘까. 다른 이유도 많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를 그중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싶다.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도시빈민들에게 공중도덕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베이징에는 지금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중국에서 오래 산 한국인 중 ‘무질서 속의 질서’를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나는 청년기부터 중국에 관심을 가져 왔지만 이 같은 시각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원밍이란 구호가 범람하는 만큼 아직 ‘원밍 서후이’는 아니라는 것.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