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한달] 신설 노조 “정치성 투쟁 접고 회사와 상생할 것”
입력 2011-07-31 21:20
달라진 노사문화·기업 표정
복수노조가 시행된 지 1일로 한 달을 맞았다. 한 회사에 여러 개의 노조가 설립되면서 각 기업에선 노사, 노노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근로조건과 복지 개선을 내세운 노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새로 생겨난 각 회사의 노조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힘쓸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강성 노조로 분류됐던 민주노총 산하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의 5개 발전회사는 모두 복수노조를 갖게 됐다.
한국중부발전 관계자는 31일 “발전회사 통합 요구는 노조에서 요구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직원복지를 위한 새 노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링의 80%를 만드는 유성기업도 지난 21일 복수노조를 설립했다. 새 노조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해 정치투쟁보다는 회사와의 상생을 추구하면서 근로조건 향상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구미의 전자부품업체 KEC에도 조합원 13명의 신생 노조가 탄생했다. KEC는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지난해 6월 직장폐쇄에 들어가 1년여 만인 지난달 정상화됐다. 상급 노동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KEC 신생 노조는 “기존 노조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한 지난 10여년은 정치적 투쟁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며 “새 노조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노조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이 지원하는 노조와 노동계가 지원하는 노조 사이의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우증권은 증권업계 첫 복수노조를 세운 지 한 달도 안 돼 기존 노조와 새 노조 간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측은 새로 만든 지점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 기존 노조를 두둔하면서 두 노조 조합원 간 반목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점 노조는 최근 노동조합 게시판을 통해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으나 일부 지점장이 노조 가입을 막는다는 정보가 있다”며 “사측이 지점 노조를 견제하는 식으로 기존 노조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존 노조 측은 “기존 노조 집행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전”이라며 “지점 노조가 직원 지지를 받을 목적으로 조합원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도 노조 문제로 시끄럽다. 삼성노조는 지난 18일 설립 신고증을 받고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노동계 지원을 받은 삼성노조가 출범한 것. 하지만 회사 측은 경영기밀과 임직원 개인정보를 외부로 빼돌렸다는 이유로 노조 설립 당일 조장희 부위원장을 해고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회사 간부 4명이 삼성에버랜드 노조를 설립하고 지난 15일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 및 임금협약 신고서를 경기도 용인시에 제출했다.
에버랜드노조가 단협을 체결함에 따라 삼성노동조합은 단협 효력이 유지되는 2년 동안 사측에 대해 교섭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대표노조에는 2년간 배타적 교섭 권한이 주어진다.
이에 대해 삼성노조 측은 에버랜드노조가 간부급 직원 4명으로 구성된 ‘어용노조’, ‘알박기 노조’라며 반발하고 있다. 삼성노조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회사가 간부급 직원을 내세워 설립한 알박기 노조”라며 “사측이 조합원들에게 이 노조의 교섭요구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만큼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KT에도 복수노조가 출범할 전망이다. KT새노조 준비위원회는 지난 28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결격 사유가 없으면 노조설립필증이 2일 발급돼 통신업계 최초로 복수노조 사업장이 탄생하게 된다.
이해관 새노조 준비위원장은 “현재 KT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 회사의 노무 관리 대행조직에 불과하다”며 “KT 내 비정규 노동자, 자회사 노동자 등 고통 받고 있는 광범위한 세력을 아우를 것”이라고 밝혔다.
새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 KT 노조는 민주노총에 속해 있다 2009년 탈퇴했다.
KT의 새로운 노조에 대한 사측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KT 관계자는 “새 노조는 임금이나 복리후생 등 조합원들의 실제적인 이익보다는 민주노총에 가입해 정치투쟁을 벌일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며 “정치색이 짙은 노조라 사내에서 큰 반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합원 4만5000명에 이르는 현대자동차는 아직까지 복수노조 설립과 관련한 움직임이 없다. 조합원이 7~8개의 분파로 나눠져 집행부에 불만이 있으면 경쟁을 통해 바꾸는 등 이들 조직이 사실상 복수노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가 새로 생기더라도 기존 노조의 견제가 심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따로 노조를 만들어봤자 교섭권을 갖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복수노조를 만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