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살아야할 이유
입력 2011-07-31 21:29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소식이 유난히 많았다. 안타까웠다. 정치인을 탓하고 정부 대책을 요구하기 전에, 오늘도 삶의 마지막 선택을 하려고 서성거리고 있을 이를 위로하는 칼럼을 쓰고 싶었다. 어설픈 희망을 얘기하는 게 도움이 될 리 없다. 인터넷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검색했다. 2003년 6월 29일 한 고교생이 쓴 질문이 검색됐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이혼하려 하고, 빚도 많고, 아빠 사업도 안 되는 것 같고, 사회는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데 내겐 능력이 없어요. 학교에선 경쟁뿐이죠.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겠어요. 도대체 이런 저는 왜 살아야 하죠?”
8년이 지난 지금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국인은 더 늘어났다. 당시 10만명당 24명이던 자살 사망자 수가 2009년에는 28명까지 증가했다.
딸에게 약을 먹이고 음독한 어머니, 아들을 안고 한강으로 뛰어내린 아버지, 외로움과 병에 지친 노인, 명문대 학생, 연예인, 아나운서, 최고경영자부터 해고 노동자까지…. 한국인은 지금 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 사람은 없을까. 알베르 카뮈, 사무엘 베케트, 코리텐 붐, 빅터 프랭클이 떠올랐다. 카뮈가 쓴 이런 문장을 읽다가 이건 내가 건드릴 주제가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곧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다.”(시시포스의 신화)
1차대전 직후 독일에선 표현주의가 등장했고 2차대전 속에선 부조리의 철학, 하드보일드 문학이 탄생했다. 30여분마다 1명씩 목숨을 끊는 사회에서 우리의 철학자, 인문학자, 예술가들은 삶의 의미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과문한 탓인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호소한 작품은 보지 못했다.
인문학의 침묵은 직무유기다. 우리 사회에 성찰과 성숙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구호와 주장, 극한대립만 난무한다. 인문학의 부재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생각해보니 인문학자들만의 탓도 아니다. 대학마다 철학과 사회학과 사학과 문예창작학과가 문을 닫는 형편이다. 아예 인문대가 사라지고 있다. 인문학자들부터 생의 벼랑에 몰려 있었다. 카뮈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지워가고 있는 셈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