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통신심의위원의 빗나간 행보

입력 2011-07-31 17:56

민주당 몫으로 방송통신심의에 참여하고 있는 박경신 위원의 언행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게시물을 자신의 블로그에 옮겼고, 그게 문제가 되자 프랑스 화가 쿠르베가 여성의 음부를 묘사한 작품 ‘세상의 기원’을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삭제한 사진은 이 그림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슈화에 나서고 있다.

박 위원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표현의 자유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적재산에 관한 식견도 상당하다. 따라서 이번에 제기한 문제 가운데 청소년 유해물과 음란물의 구분, 심의 과정에서의 당사자 의견청취 등은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직무와 관련된 처신을 보면 상당한 우려를 낳게 한다.

먼저 그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신분이다. 위원직에 지원할 때는 심의 제도의 존재이유와 기능, 그리고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결정 내용을 들고 나와 일반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 직무를 포기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자신의 소수의견이 억울하다고 해서 재판정을 나와 바깥에서 떠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박 위원의 독선도 비난 가능성이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성적으로 흥분되나요?”라고 묻는 것은 답을 전제하고 있기에 무례한 질문이다. 같은 성기 사진이라도 의료용과 음란물은 다르다.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인터넷 게시물은 공중의 영역이기에 심의기구를 두고 있다. 위원 9명의 판단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위원회 결정을 부인하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미국시민권자라는 박 위원의 신분이다. 미국에서 성장하고 공부해 학자가 된 것은 인정하지만 일반적인 표현물의 가치와 성격을 심의할 때는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를 따라야 한다. 이 부분에 객관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으면 심의위원 자격이 없다. 심의기구는 학자가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엄정한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