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황구도’, 인간 속물근성 개에 빗대 꾸짖다
입력 2011-07-31 17:36
“맹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하루만 지나보렴. 뒤돌아 설 거야. 맹세와 배신은 개의 꼬리 같은 것….”
사랑보다는 화려한 외양과 조건에 끌리고, 순수한 시절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태를 이 연극은 ‘개 같은 짓’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작품의 요체는 쓴웃음으로 가득한 은유와 풍자다. 그러니 포스터만 보고 가벼운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나을 듯하다. 8월 28일까지 서울 혜화동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에서 공연 중인 극단 작은신화의 ‘황구도’ 이야기다.
한 주인 밑에서 사는 어린 황구 수컷 ‘아담’과 순종 스피츠 암컷 ‘캐시’는 사랑에 빠져 영원한 믿음을 맹세한다. 아담은 주인에게도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한 상태다. 순종 스피츠 새끼를 보려는 주인은 캐시와 아담의 사랑이라든가 아담의 충성심에는 아랑곳없이 스피츠 수컷을 물색한다. 결국 캐시는 주인이 정해준 짝 ‘거칠’에게 가버린다. 그것만으로도 작품 하나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의 줄거리였겠지만, ‘황구도’는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그리고 헛된 꿈과 열정, 배신과 회한으로 가득 찬 세 마리 개의 인생이 무대에 펼쳐진다.
주인공들을 ‘개’로 설정한 것 자체가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은유일 터인데 이어지는 유머에 관객은 쉽사리 웃지 못한다. 의인화된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 모습은 우스꽝스럽고도 추하다. 인간은 성욕과 물욕에 환장한 ‘짐승’처럼 묘사되고, 개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살아간다.
개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과장된 분장이나 가면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런 모습으로 연기를 한 데 비해 인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서커스 광대들을 연상케 할 만큼 괴이한 모습이다.
이번 연극에선 광대 분장을 한 배우들이 인간 역할을 맡아 연기하긴 했으나, 대본에는 사람을 커다란 꼭두로 처리하고 두세 명이 꼭두를 조종하게끔 나와 있다. 극은 때로는 느릿느릿, 때로는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개(혹은 인간)들의 일생을 조명한다.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한 배우들의 연기 외에 막간에 종종 나타나는 그림자극이나 소품을 활용한 인형극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짧고 간결하게 오가는 대사도 인상적이다. 극단 작은신화의 25주년 기념공연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다. 조광화 작가·최용훈 연출에 강일 이은정 안성헌 최지훈 서광일 등이 출연한다. 티켓 가격은 2만5000원.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