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출혈 경험자가 소화기 병 의료비 지출 많다

입력 2011-07-31 18:00


‘속이 쓰리고 아프다’ ‘신트림이 나고 메슥거리며 소화가 안 된다’ ‘헛배가 부르다’ ‘잘 체하고 명치 부분이 더부룩하다’ ‘설사가 잦고 아랫배가 항상 불편하다’….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 소화성궤양과 기능성 위장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들이다. 기능성 위장장애와 소화성궤양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앓는 소화기 병이다.

얼핏 생각하기엔 이 가운데 식생활 습관의 서구화에 따른 위식도 역류증과 같은 기능성 위장장애 때문에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더 많고, 그만큼 의료비도 많이 쓸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과 같은 소화성궤양을 치료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학교실 김나영 교수팀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 치료를 받은 위궤양(85명) 십이지장궤양(89명) 등 소화성궤양 환자 174명과 기능성 위장장애 환자 89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의 ‘직접의료비용’을 조사해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소화성궤양 환자들과 기능성 위장장애 환자들이 1년 동안 쓴 직접의료비용은 각각 208만5664원, 27만7479원이었다. 소화성궤양 환자들이 기능성 위장장애 환자들보다 무려 7.5배나 많은 돈을 쓴 셈이다. 반면 소화성궤양 환자들 중 위궤양 환자와 십이지장궤양 환자들은 각각 228만6948원, 189만3427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직접의료비용이란 통원 치료에 따른 교통비, 입원 치료에 따른 간병비 등을 제외하고 병 치료를 위해 순수하게 지출한 비용을 말한다.

김 교수팀은 이 직접의료비용 지출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도 조사했다. 위출혈 경험 유무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P)균 감염 및 아스피린 등 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복용 여부가 그것이다.

HP균에 감염돼 위염, 위궤양 등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스피린 등의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출혈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 조사 대상 소화성궤양 환자 10명 중 6명 이상(63.2%)이 이미 위출혈을 한 번 이상 경험했고, 소화성궤양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 중 HP균 감염자와 소염진통제 복용 경험이 있는 사람도 각각 77.1%, 23.1%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결국 지혈 처치 및 응급수술 등 소화기 병 치료에 따른 직접의료비용 증가로 직결됐다. 소화기 병으로 인해 위출혈을 경험한 사람들은 연평균 250만9418원을 사용해 그렇지 않은 비(非)출혈군의 76만979원보다 3.3배나 많은 의료비를 부담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보통 HP균에 감염된 소화성궤양 환자가 약을 먹고 HP균을 없애면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균 치료를 마쳤다고 해도 피를 묽게 하는 성질을 가진 아스피린 등의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과거 궤양이 생겼던 자리에서 출혈이나 천공(위벽이 뚫리는 증상)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기 쉽다”면서 “이 때문에 상당한 의료비를 지출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런 출혈 및 과다 의료비 지출 경향은 특히 고령 환자일수록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소화성궤양 환자의 위출혈, 특히 천공은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술 전 또는 수술 중 사망률이 약 10%나 되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의사들이 심장혈관 동맥경화 및 뇌경색증 예방을 위해 소화성궤양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스피린 등 소염진통제 복용 필요 시 반드시 위벽 보호제나 위산 분비 억제제를 함께 복용하도록 주의를 당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특히 심·뇌혈관 질환 예방 및 치료를 위해 평소 항혈소판 제제 및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장·노년층은 의사가 처방해준 용량을 준수하면서 정기적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며 위출혈 위험성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변 시 자주 흑색변이 나오는 사람과 과음 후 구토를 자주 하는 사람들도 위출혈을 경계해야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