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방대책, 수준을 높여라-(1) 후진적 방재 시스템] 도시형 수방매뉴얼 만들어야
입력 2011-07-29 21:30
수도권과 경기북부, 강원도 일대를 강타한 104년 만의 집중호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후에야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후 변화 양상을 반영하지 못한 데다 큰 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재 매뉴얼’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한계에 이른 현 방재 시스템이 어떻게 선진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정부 “위기대응 체계 전면 보완키로”=김황식 국무총리는 29일 정부중앙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며 “기후변화로 기상이변이 빈번한 만큼 위험관리 요인과 각종 시설대책 등 위기대응 체계를 전면 보완해야 한다”며 “현행 재해 위험과 시설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소방방재청은 회의에서 수해지역 응급복구 작업을 1주일 앞당겨 다음달 5일까지 마무리하고 원인 조사도 조기에 끝내기로 했다. 그후 방재 기준을 국제 수준으로 보완하겠다고 보고했다.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위험 징후가 있는 지역에서는 주민들을 강제로 대피시키고 재난안전선을 설치키로 했다. 산사태와 급경사지 관리는 관련 기관과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소방방재청은 현재 5∼30년 빈도의 강수량에 대처토록 설계된 전국 배수시설을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100년 빈도 강수량에 대비할 수 있게 보완하는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또 지역별 강수량 통계 등을 분석해 ‘방재 기준 가이드라인’을 연말까지 완성, 각 지방자치단체에 제시할 방침이다.
◇‘대도시 맞춤형’ 방재 매뉴얼 필요=방재 전문가들은 현재의 방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낡은 하수관 등 배수시설을 정비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대도시에 적용될 수 있는 수방 대책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여 있는 도시에 지금과 같은 배수 시스템이 유지될 경우 또 다시 ‘강남 물난리’를 겪을 수 있다. 여운광 명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농촌에는 같은 비가 오더라도 땅 속으로 스며드는 비의 양이 많다. 반면 도시엔 비가 오면 빠르게 하류 쪽으로 물이 몰려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이라며 “새로운 개념을 적용한 방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유례없는 폭우가 도시에 쏟아져 우왕좌왕하다 교통대란까지 일어났다”며 “수해를 100% 막기는 어렵지만 갑작스러운 폭우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마련해 교육·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저류지 등 빗물을 한동안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도록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병화 한국방재협회장은 “현행 자연재해대책법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저류지, 지하 물탱크 등 침수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도시계획 인허가 등의 과정에서 이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 교수는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30㎝짜리 턱을 만들어주면 빗물이 운동장에 고여 저류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지하 주차장에 저류지 시설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중앙정부와 기초자치단체 간 손발이 맞지 않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우면산은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등급 1등급 지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서초구는 별다른 예방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서초구는 산림청의 산사태 예보 권고가 있었는데도 지난 27일 산사태 예보조차 발령하지 않았다. 서초구 측은 그러나 “산사태 예보와 관련해 산림청장의 공문은 물론 담당자들이 산림청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선진국 방재 시스템은=방재 대책을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일본의 경우 1961년 ‘치산·치수 긴급조치법’을 제정, 5년마다 수해 대책을 세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사이타마현 등 상습 침수 지역에 설치된 대규모 방수로를 국내 위험 지역에 건립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처럼 생활하수가 흐르는 하수관과 빗물이 흐르는 우수관을 분리해 하수관의 처리 용량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 심재현 방재연구실장은 “미국에는 홍수 위험이 높은 곳에 대한 건축 인허가 규정을 따로 두고 ‘홍수보험’을 들도록 강제하는 법 조항도 있다”고 전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