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물폭탄] 단전·단수 겹쳐 끼니는 김밥… 식수는 편의점 생수로 때워

입력 2011-07-30 00:34

폭우 직격탄을 맞은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마을 곳곳은 29일 흙 묻은 가구와 가전제품, 옷가지 등이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했지만 집들은 온통 흙탕물로 얼룩져 있었다.

이불을 꺼내 널던 이광수(76·여)씨는 “하늘에서 내린 비인데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50년째 이곳에 살면서 이런 비는 처음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의 흙먼지는 비질을 할 때마다 뿌옇게 흩날렸다. 양창호(67)씨 집 벽지엔 물이 들어찬 자국이 허리 높이까지 남아 있었다. 양씨는 “마을이 이 지경인데 동사무소에서는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 대부분은 전기를 쓸 수 없어 힘들어했다. 식수는 편의점 생수로, 끼니는 김밥으로 해결했다. 집 앞 토사를 쓸던 윤모(69·여)씨는 “아침도 거르고 토사를 치우고 있는데 시에서는 물도 공급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도 상황은 비슷했다. 마을 입구엔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널려 있고 집 외벽은 토사로 도배가 돼 있었다. 쓰러진 오토바이와 흙에 파묻힌 자동차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복구 지원을 나온 군인들은 빌라 안을 가득 채운 흙을 삽으로 분주하게 퍼냈다. 빌라 앞 공터는 흙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굴착기로 골목에 쌓인 흙을 치우던 마을 이장 송요원(47)씨는 “빗물이 집 안으로 들어간 주민이 많은데 골목이 흙으로 덮여 집기를 내놓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24개 시·군에서는 주택 4619채가 물에 잠기고 4013가구 872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8일 군인과 소방대원 등 9000여명이 응급 구호 조치를 한 데 이어 29일에는 1만3000여명이 동원돼 침수 주택을 정비했다. 김문수 도지사는 긴급수해대책회의를 열고 양주 포천 가평 양평에 2억원씩, 광주 동두천 남양주 연천 파주에 3억원씩 지원키로 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선 아직도 2000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안 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방배동 임광아파트 등 강남·서초구 4곳 2703가구에 지하 전기설비 침수로 단전이 계속되고 있다”며 “배수 작업이 끝나는 대로 안전점검 후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단전에다 단수까지 겹친 아파트 단지에는 임시발전기와 급수차, 생수 등이 지원되고 있다.

우면산 산사태로 막혔던 남부순환로는 새벽에 다시 뚫렸지만 토사가 들어찬 아파트 내부나 이면도로는 중장비 투입이 어려워 아직 복구가 요원하다.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오늘 목표는 피해 주민이 집에 드나들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이면도로까지 정리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침수와 정전으로 문을 닫았던 대치동 학원가는 28일부터 정상을 되찾아 수업을 재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6일부터 계속된 집중호우로 29일 오후 11시 현재 62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또 주택 침수와 산사태 우려로 전국 7168가구에서 이재민 1만4193명이 발생했다. 0시30분쯤 서울 북아현동에선 무너진 축대가 주택을 덮쳐 2명이 매몰됐다. 노모(45·여)씨는 즉각 구조됐지만 김모(54)씨는 밤샘 구조 끝에 숨진 채 발견됐다.

비가 그치면서 주요 도로 통제는 빠르게 풀렸다. 오후 5시 현재 서울에선 잠수교와 개화육갑문, 이촌고수부지 일부 구간만 통제되는 등 전국 8개 도로만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경원선(소요산∼신탄리역)과 경의선(문산∼도라산역) 운행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동두천·포천=천지우 이용상 기자, 전국종합=김칠호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