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물폭탄] 人災라도 국가 100% 배상 드물어… 자연재해는 예방·관리 과실 명백할 때 책임

입력 2011-07-29 18:49

중부 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본 이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관련 소송에서 ‘손해 발생의 예견 가능성’과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수준의 방호조치 여부’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즉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라고 판단될 때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자연재해라도 사전에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관리 조치에 명백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책임을 물었다. 다만 국가에 100% 책임을 지우는 판례는 극히 드물다.

대법원이 수해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1990년 8월 선고한 ‘망원동 수재 사건’이 처음이다. 단골 침수 지역이던 서울 망원동 일대에서는 84년 9월 330㎜가 넘는 집중호우에 유수지 펌프장 수문이 붕괴되면서 1만8000여 가구가 물에 잠겼다. 이재민 1만2000여명이 참여해 6년간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대법원은 “서울시가 설치·관리하는 공공물인 유수지 안 수문상자의 결함으로 수해가 발생했다”며 53억2000여만원을 배상토록 했다.

반면 98년 8월 중랑천 범람으로 수해를 입은 서울 공릉 1·3동 주민 110명이 낸 소송에서는 1·2심 재판부가 모두 주민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불가항력의 재해였다”며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중랑천 상류 지역에서 6시간 동안 340㎜의 비가 내려 계획홍수위를 훨씬 넘는 유수가 범람했기 때문에 관리청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주민들은 미리 지급받은 18억4000만원을 반환해야 했다.

이런 판례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2004년 4월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공장이 매몰된 한 업체가 김해시산림조합과 경남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충분한 예방 조치 없이 암반을 채취한 과실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했다”며 피고들에게 각자 손해액의 70%인 3억5000만원을 배상토록 했다.

대법원은 또 2003년 6월 경기도 남양주시 한 계곡에서 야영하던 중 폭우로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사망한 홍모씨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재해방지 책임을 소홀히 한 지자체의 과실 20%를 물어 8400여만원을 배상토록 했다.

반대로 2001년 7월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휘경동 주민 120여명이 서울시와 동대문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누적 강수량이 200년 빈도의 폭우라 시설 기준과 상관없이 침수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며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