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흉흉한 민심에 진땀… 中 고속열차 참사 현장 방문 “사고원인 뭐냐” 질문에 곤욕
입력 2011-07-28 21:33
‘7·23 고속열차 추락 참사’ 이후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가적 자존심은 자존심대로 무너진 데다 고속철 안전성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민심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이번 참사로 확인된 총제적인 난맥상을 모두 드러낼 수도,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고 발생 닷새째인 28일 오전 10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사고 현장인 원저우(溫州)시를 찾았으나 피해자들의 끓어오르는 불만 앞에 곤욕을 치렀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는 난처한 질문에 쩔쩔매야 했다. 원 총리는 사망자를 애도하고 기적적으로 구출된 여자아이 샹웨이를 포함해 부상자들을 위로했으나 검은색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거나 배상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신화통신, 중앙TV(CCTV) 등 대표적인 관영 언론 기자들로부터도 “사고 원인과 처리 과정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불과 며칠 만에 사고 흔적을 깨끗이 치워버린 곳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면 조사결과의 투명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등 송곳 질문을 받고 진땀을 흘렸다. 그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질문에 “최근 11일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 총리는 이에 앞서 27일 국무원 상무위원회를 열고 고속철 참사에 대한 엄정한 조사를 지시했다. 국무원은 회의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사고조사 과정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참사를 둘러싼 정부의 각종 발표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안전생산감독관리총국 뤄린(駱琳) 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국무원 사고조사팀은 28일 오전 제1차 회의를 연 뒤 신호 설비 및 관제 시스템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내세웠다. 사고 하루 뒤 철도부가 발표한 ‘벼락으로 인한 둥처(動車)의 동력 상실’에서 이번에는 차량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 고속철의 안전성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표된 내용인 만큼 주목된다.
또 뤄린 국장은 사고조사 결과를 9월 중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때쯤이면 대형 참사의 아픔도 어느 정도 엷어져 있을 시점이다.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고속철 사업 수주를 둘러싼 부패가 꼽히고 있다. 원 총리는 사고 현장 기자회견에서 부패 문제도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약속대로 될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