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물폭탄] 우면산 일대 주민들 “배수로 정비 요구 구청서 매번 묵살” 분통
입력 2011-07-28 21:46
산사태가 할퀴고 간 서울 우면산 일대에서는 쌓인 흙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28일 오전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에서는 마을 주민과 군 병력, 경찰, 소방관 등이 산에서 마을 입구까지 끊임없이 밀려드는 흙탕물을 치우느라 악전고투를 벌였다. 마을과 산 경계면에 있었던 배수로가 산사태로 훼손되면서 마을로 물이 계속 유입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집 지하실에 가득 들어찬 진흙을 포대에 담아 대문 앞에 쌓느라 분주했다. 젊은 사람이 있는 집은 더디지만 정리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노인만 있는 가정은 손을 놓고 있었다.
힘겨운 작업에 지친 주민들은 서울시와 서초구를 성토했다. 사무용품 매장을 운영하는 이창민(33)씨는 “옆 가게는 지난해 침수된 뒤 여기서 더 이상 장사 못 하겠다며 이사갔다”면서 “산사태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매년 침수됐는데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전날 오전 7시부터 가게 안에 가득 찬 흙탕물을 퍼냈지만 계속된 비로 흙탕물이 끊임없이 들어오자 손을 놨다.
마을회관에서 쉬고 있던 정모(60·여)씨는 “서초구에 배수로를 정비해 달라고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고, 큰 나무들을 잘라 달라고 얘기했지만 ‘위험하지 않다’고만 했다”고 성토했다. 이 마을 주민 임모(33)씨는 전날 오전 집 앞에 세워둔 승용차에 타려던 순간 쓰러진 나무에 깔려 숨졌다.
전날 60가구가 급류에 고립됐던 우면동 형촌마을에서도 서울시와 서초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능식(59)씨는 “우면산 일대에 생태공원을 만들면서 배수로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했다.
주민들은 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하천길이 바뀌었으며, 공사가 끝난 뒤 남은 건축자재가 인근 저수지 배수로를 막아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복구 작업은 오후에 비가 그치자 탄력을 받는 모습이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토사가 들어간 집 청소와 물길 만드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비가 더 오지 않으면 일요일에는 응급복구는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면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방배동 불교TV 앞과 아파트 단지도 복구 작업에 활기를 띠었다. 아파트 단지 앞 남부순환로로 넘쳤던 진흙과 나무들이 정리되면서 중장비가 대거 투입됐기 때문이다.
전날 래미안아트힐아파트와 임광아파트로 밀려들었던 나무는 밤샘 작업으로 잘려 길가에 치워졌다. 래미안아트힐 104동 뒤편 주차장과 통로에 가득했던 토사는 50㎏짜리 2500여 포대에 담겨 치워졌다. 찌그러져 나뒹굴던 고급 승용차들도 모두 견인됐다.
인근 주민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편을 호소했다. 산사태에서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서초어린이집 교사 김모(32·여)씨는 “건물 지하에서 물을 빼내야 하는데 전기가 없어 양수기를 돌리지 못하고 교사들이 힘겹게 바가지로 퍼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진삼열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