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부, 깊어지는 고민… 고속열차 참사로 총체적 난맥상 노출
입력 2011-07-28 18:35
‘7·23 고속열차 추락 참사’ 이후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참사로 확인된 총제적인 난맥상을 모두 드러낼 수도,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국가적 자존심은 자존심대로 무너진 데다 고속철 안전성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민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사고 발생 닷새째인 28일 오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뒤늦게 사고 현장인 원저우(溫州)시를 찾은 것은 사태 수습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중국 지도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원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이곳을 찾아 사망자를 애도하고 부상자를 살펴본 뒤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원 총리는 이에 앞서 27일에는 국무원 상무위원회를 열고 고속철 참사에 대한 엄정한 조사를 지시했다. 국무원은 회의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사고조사 과정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참사를 둘러싼 정부의 각종 발표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8일 아침에는 신화망(新華網) 중앙TV 등 관영 언론이 하루 전 열린 상무위 소식을 머리기사로 전하면서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하며 생명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심달래기용’인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안전생산감독관리총국 뤄린(駱琳) 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국무원 사고조사팀은 28일 오전 제1차 회의를 연 뒤 신호 설비 및 관제 시스템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내세웠다. 사고 하루 뒤 철도부가 발표한 ‘벼락으로 인한 둥처(動車)의 동력 상실’에서 이번에는 차량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 고속철의 안전성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발표된 내용인 만큼 주목된다. 이뿐 아니라 고속철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군사 작전에도 상당한 타격이 생기게 된다. 인민해방군은 최근 고속철을 이용한 대규모 병력 이동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뤄린 국장은 사고조사 결과를 9월 중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때쯤이면 대형 참사의 아픔도 어느 정도 엷어져 있을 시점이다. 전후 상황을 보면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고속철 사업 수주를 둘러싼 부패가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지도부는 이번에 이런 문제까지 건드릴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자칫 자승자박(自繩自縛)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