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소극장 콘서트… 기타 선율에 실린 ‘음유시인’의 속삭임
입력 2011-07-28 17:40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36)의 음악은 깊고 조용하다. 속삭이듯 그는 노래한다. 잔잔한 기타 소리가 목소리를 보조하는 가운데 읊조리는 노래 가사는 시(詩)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그는 ‘가요계의 음유시인’으로 통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루시드폴의 노랫말과 그의 음악 전체를 보듬는 단어가 ‘음유시인’이라는 말 외엔 딱히 없기 때문이다.
루시드폴은 다음 달 17일부터 한 달 동안 서울 혜화동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2011 목소리와 기타’라는 타이틀로 공연한다. 200석이 안 되는 공연장이다. 서울 공연이 끝나면 10월 중순까지 전국 소극장 투어에 들어간다. 화끈한 가창력도, 관객 혼을 빼놓는 연주력도 없지만 소극장은 루시드폴의 음악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장소여서 팬들의 기대는 높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루시드폴을 만났다. 우선 자신의 음악과 비슷한, 차분한 목소리로 이번 콘서트를 소개했다. 그는 “공연 제목이 ‘목소리와 기타’이니 내 목소리와 기타가 ‘메인’이 되고 건반과 관악기(플루트 등)는 약간의 맛만 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전에서 공연을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학전은 ‘가객’ 고(故) 김광석을 비롯해 많은 뮤지션들에게 ‘요람’이 됐던 곳이다. 그는 지난해에도 같은 장소에서 ‘목소리와 기타’라는 타이틀로 한 달 간 콘서트를 열었다.
루시드폴은 “뮤지션들이 학전에서 공연을 여는 게 한동안 뜸했다”며 “(학전보다) 더 쾌적한 공연장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학전에서 계속 노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학전처럼 전통 있는 공연장이 우리나라엔 별로 없어요. 예컨대 제가 (1990년대 말 결성했던 록 밴드) ‘미선이’로 활동할 때 공연했던 무대 중 남아 있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목소리와 기타’라는 타이틀로 매년 학전에서 공연하고 싶어요.”
이번 콘서트에서는 연말 발매 예정인 5집 앨범 수록곡 일부도 공개된다. 그는 새 앨범에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갈 것 같다”고 귀띔했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서 루시드폴을 검색하면 ‘대한민국의 물리학자이자, 대중음악인이다’라는 소개 글이 뜬다. 그만큼 과거 ‘공학도 조윤석’이 거둔 성과는 화제가 됐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EPFL)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유학 당시 자신의 논문이 유명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발행하는 과학저널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게재돼 유명세를 탔다. 심혈관 질병 치료 물질을 개발해 미국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그는 이런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돌아왔다. 음악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제2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전할 조언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 말을 걸러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살다보면 그냥 ‘저 길로 가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성적인 판단이나 감성에 이끌려 내리는 결정이 아니에요. 일종의 ‘직관’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은데, 저는 그럴 때면 그냥 ‘저 길’을 따라갔던 것 같아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