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도로명 주소, 전면 재검토하라
입력 2011-07-28 17:39
도로와 건물을 중심 개념으로 삼은 새 주소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문화유산정책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결성한 ‘우리땅이름지키기시민모임’은 27일 토론회를 열어 새 도로명 주소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전면 폐기를 촉구했다. 정부 계획은 2013년 말까지 기존의 주소와 병행해 쓰다가 2014년부터는 새 도로명 주소만 사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정부가 새 주소에 대해 국민 의견을 듣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지난 1997년 처음으로 계획을 세운 이후 꾸준히 여론을 수렴했다고 하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행안부는 또 이의신청 기간에 문제가 있는 지명을 바로잡았다고 항변할지 몰라도 제도 자체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새 주소명 체제의 골간은 일제시대 이후 지번에 바탕을 두고 있는 주소를 도로 중심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 방식이 국제적인 도로체계와 부합하는 데다 이를 통해 길 찾기에 들어가는 돈을 비롯해 물류비용 3조1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행안부가 도로표지판 교체 등을 위해 지출한 돈은 3692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행안부는 행정의 효율만 중요하게 여겼지 땅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간과했다. 토론회에서 언급되었듯 새 주소법 시행으로 사라지게 될 4만여개 동(洞)과 이(里)의 이름에는 우리 조상이 살아온 역사와 철학이 담겨 있다. 면면히 이어져 오는 이름 속에 문화가 전승되는 것이다. 경제적 효과도 의문이다. 도로명 주소 도입을 논의하던 1997년에 비해 지금은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으로 길 찾기가 훨씬 편리해지지 않았나.
행안부는 여론이 악화되자 이의신청 기간을 연장할 모양이다. 종교계에서 불만을 제기해 난관에 봉착한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의신청을 받아 들어주는 식의 땜질 처방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비록 늦은 감이 있고, 절차가 상당히 진행된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새 제도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다시 구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