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걸레의 고마움
입력 2011-07-28 17:43
비는 온 집안을 눅눅하게 만든다. 비가 잠시 멈춘 사이 햇살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햇살은 그동안 갇혀 지낸 것이 억울한가 보다. 수재민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저곳을 비추며 돌아다닌다. 그러더니 결국 내 집 창문으로 들어와 마루 위 발자국, 누군가 흘린 설탕물 자국, 식탁 밑 반찬자국까지 다 비춰준다. 햇살아, 그냥 눈감고 지나가지 그러니. 투덜대며 마지못해 걸레를 찾아든다.
나는 집안일 중에서도 걸레질이 제일 싫다. 허리 구부린 채 무릎걸음으로 바닥을 닦으며 돌아다니면 무척 힘이 든다. 더러운 걸레를 손으로 만지고 빠는 일도 썩 내키지 않는다. 가족들이 깨끗한 방에서 지내는 보람마저 없다면 걸레질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걸레를 빨고 걸레질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면 홈쇼핑마다 자기네 걸레가 제일 성능도 좋고 빨기도 쉽다고 자랑을 할까? 물걸레 로봇 청소기, 걸레질·걸레빨래·걸레짜기가 한번에 된다는 회전봉 걸레, 물걸레도 되는 스팀 청소기,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걸레. 종류도 많다.
내가 아무리 걸레질을 싫어해도 걸레 없이 살 수는 없는 게 우리네 살림살이다. 살다 보면 많고 적고의 차이가 있을 뿐 때가 안 낄 수 없다. 우리 집은 둘째가 돌 무렵 제일 때가 많이 끼었다. 걷는 데 자신이 붙은 아이는 현관문을 열어 놓고 아파트 복도가 앞마당이라도 되는 듯 드나들었다.
나중엔 신발 신겨 달라는 시간도 아까운지 맨발로 무사통과! 한참 뒤, 바닥에 뺨을 대고 마루를 살펴보면 마룻바닥이 온통 조그맣고 까만 발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아이가 지쳐 잠이 들면 그제야 걸레를 들고 바닥을 박박 닦으며 돌아다녔다.
하얗던 걸레 몇 개가 새까매졌을 때 마루는 다시 깨끗해졌다. 걸레의 희생으로 우리 집이 쾌적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그런 걸레에게서 가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제일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몸을 낮춘 채 구석구석까지 닦고 돌아다니는 모습. 자기 몸이 더러워지면서 세상을 닦는 모습이 서로 참 닮았다.
우리 아파트 10층에 몸 매무새가 늘 단정한 할머니가 계신다. 그분은 매일 아침 일찍 친구와 함께 동네 산을 오르는데 꼭 흰 목장갑을 끼고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가신다. 전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 집을 치우는 것도 힘든데 동네 산까지 치우고 다니시는 이런 분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가는 국민들, 추운 겨울 밥차에서 자원봉사하는 분들, 고액의 연봉을 마다하고 오지에 가서 의료봉사하는 분들, 우면산 기슭에서 밤새 뻘을 치우신 분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나마 깨끗한 것은 이분들 덕분이 아닐까?
이처럼 걸레의 고마움을 알면서도 걸레질을 꺼려하는 내 게으름. 더러움을 비춰주는 햇살에게까지 투덜대는 내 뻔뻔함. 이런 내 모습이 햇살 아래 고스란히 드러나고 만 더러운 땟자국 같다.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