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흙탕물에 잠긴 밤섬

입력 2011-07-28 17:43


1966년 7월 15일 서울에 큰물이 졌다. 한강과 중랑천이 범람하고, 시내 곳곳의 하수구가 넘쳐 저지대가 물에 잠겼다. 서울 시내에서만 84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2만3000동의 건물이 침수·파손됐다. 당시 강우량은 하루 226.3㎜, 시간당 최고는 73.3㎜였다. 비가 잠시 그쳤다가 하루 100㎜씩 쏟아붓는 일이 26일까지 계속됐다.

‘불도저’란 별명을 갖고 있던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이듬해 9월 21일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 신도시를 조성하는 한강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가 펴낸 ‘서울600년사’를 보면 김 시장이 부임 3개월 만에 맞은 한강 홍수가 한강 개발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 꼽힌다.

이 계획에 따라 여의도 옆 밤섬은 사라졌다. 여의도 표고를 9m에서 13m로 올리고 섬 주변에 돌아가며 제방을 쌓기 위한 골재를 확보하고 한강 흐름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68년 2월 폭파됐다. 밤섬에서 퍼낸 14만7500㎥의 흙과 11만4000㎥의 석재를 활용해 높이 16m, 총연장 7.6㎞의 윤중제가 110일 만에 완공됐다. 대신 배를 만들고 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62세대 443명의 주민들은 인근 마포로 강제 이주됐다. 17만㎡의 밤섬은 깎여나가 강물이 조금만 불어도 물밑으로 가라앉게 됐다.

여의도 개발로 제모습 잃어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08년 밤섬 면적은 27만㎡로 다시 늘었다. 토사 퇴적으로 면적이 연평균 4200㎡씩 증가했다. 섬에는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생태조사 결과 지난해 밤섬에서는 33종의 조류와 39종의 어류가 관찰됐다.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흰뺨검둥오리 같은 텃새,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 등 철새도 있다. 밤섬은 도심 속 철새도래지로 각광받으며 경이로운 자연의 복원력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서울시는 99년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지난 26일부터 쏟아진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밤섬이 또 물에 잠겼다. 1㎞가량 되는 강폭을 가득 채운 도도한 흙탕물 위에 큰 나무 머리만 부초처럼 떠 있다. 밤섬은 팔당댐 방류량이 초당 5000t을 넘기면 물에 잠긴다고 한다. 퇴적물로 면적은 넓어졌다지만 여의도에 떼어준 높이는 그대로이니 당연한 일이다.

출근길 물 속으로 사라진 밤섬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새들은 이 빗속 어디에서 쉬고 있을까? 날지 못하는 곤충들은 떠내려갔겠지, 뿌리 얕은 나무들이 거센 물결을 이겨낼 수 있을까?

수십명의 인명이 희생된 재앙 앞에 새 둥지 걱정이나 하는 게 어쭙잖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의도 개발이 원천적으로 잘못됐다는 환경원리주의를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여의도 개발은 실상 위업에 가깝다. 군사정권 시절, 군 출신의 서울시장이 밀어붙였다고는 하지만 여의도의 경제가치는 밤섬의 환경가치와 비길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밤섬이 사라진 대신 여의도는 이번 같은 홍수에도 물에 잠기지 않게 변모하지 않았는가.

자연 파괴하면 대가 따라

그러나 흙탕물에 잠긴 밤섬은 ‘한번 파괴된 환경은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는 경구를 되새기게 한다. 밤섬은 연례행사처럼 홍수에 잠겨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복원됐다는 생태계도 여전히 포유류는 한 종도 없는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자연 앞에 무력하면서도 문명의 이기와 지능을 동원해 맞서기라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가공할 파괴력 앞에 자연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밤섬과 그 생명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홍수에서 산사태로 숱한 희생자가 난 게 등산로를 만든다,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며 산을 함부로 건드려 생긴 인재(人災)라고 하지 않는가. 이번 같은 기록적 폭우만 해도 인류가 지구를 훼손해 자초한 기상이변 때문이라니 밤섬이 안쓰러운 게 그저 감정의 사치나 단순한 감상(感傷)만은 아닐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