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제자도의 삶’ 이 땅에 새기고… 복음주의 거장 존 스토트 목사 별세(1921∼2011년)
입력 2011-07-28 18:13
이 시대의 영적 거장 한 명이 이 땅을 떠났다.
27일 오후 3시15분(현지시간) 런던 바나바칼리지 은퇴자 숙소. 20세기 복음주의의 틀을 구축한 존 스토트(사진) 목사는 지인들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과 헨델의 ‘메시아’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90세. ‘존 스토트 미니스트리’의 벤자민 호만 대표는 “스토트 목사는 주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과 성경적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 땅을 떠났다”며 “진정 그는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복음주의권의 거인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독신이었던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비교할 수 없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헌신했다. 참된 제자도의 삶은 그가 평생에 걸쳐 강조한 주제였다. 목회자와 설교자, 복음주의 학생운동 지도자, 실천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대를 뛰어넘어 영향력을 미쳤다. 영국성서공회 회장, 영국복음주의연맹(BEA) 회장, 영국IVF의 전신인 대학기독인교류회(UCCF) 설립에도 기여했다. 제3세계 기독청년들을 교육하고 훈련할 목적으로 복음주의문학재단(현 국제랭함파트너십의 전신)을 설립했다. 1982년에는 기독교의 반지성주의를 반대하고 평신도들에게 신앙과 삶, 선교의 연관과 교육을 위한 현대기독교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아 왔다. 특히 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협의회(로잔대회)에서 신학과교육위원장을 맡아 복음주의와 사회적 실천의 관계를 정립해 복음주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자랑스러워한 것은 올소울즈교회 목회다.
그는 1945년 교구목사로 시작해 50년 29세의 나이에 담임목사가 됐다. 그리고 75년 은퇴할 때까지 30년간 올소울즈 한 교회만 맡아 섬겼다. 그는 기도 우선, 변증 전도, 정기적인 전도, 구도자와 회심자에 대한 세밀한 접근, 체계적 훈련 등을 통해 현대도시 사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올소울즈교회는 주중 점심예배, 주중 기도회, 환우를 위한 기도회, 어린이 교회, 가족 예배, 유학생 예배 등 획기적인 예배를 통해 ‘모든 영혼을 깨우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빌리 그레이엄,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가 그를 ‘가장 존경스러운 성직자’ ‘개신교의 실제적인 교황’으로 칭송했지만 그는 정작 “나는 친구이자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익한 종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했었다.
1921년 4월 27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청소년 시절 성공회 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존재와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깊은 영적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 17세 때 학교 채플에서 설교를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뒤에는 복음의 진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선 적이 없었다. ‘복음주의는 성공회와 결별해야 한다’는 마틴 로이드존스의 주장에는 끝내 동조하지 않았다.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을 지금까지 영국성공회 내에 머물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 전쟁이나 실업, 부패 등을 심각한 사회악으로 봤다. 특히 평신도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이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일깨워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사회악과의 싸움을 독려하고 영적, 사상적으로 지원하는 게 목회자들의 중요 역할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현대 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등의 저서를 통해 이러한 지침을 제공해왔다.
그는 새, 사진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조류학자 윤무부 박사의 안내를 받아 직접 한국의 새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2001년 국내에서 출간된 ‘새 우리들의 선생님(IVP)’은 그때 찍은 사진과 해설을 모은 것이다. 그는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계시인 자연 만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 환경단체인 로차(arocha.org)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스토트 목사는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캠퍼스복음화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한국에는 93년과 99년 IVF(한국기독학생회) 전국수련회와 IFES(국제복음주의학생회) 세계총회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예수가 주인인가’를 되물어 봐야 한다”며 “주인이신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존 스토트의 후예’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국내에도 고 옥한흠 목사를 비롯해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하용조(온누리교회) 목사 등이 직접 그와 교제하며 영향을 받았다. 한철호 선교한국파트너스 상임위원장 등과 같이 스토트 목사의 후예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은 “그분이 남긴 ‘균형 잡힌 기독교’라는 업적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