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갑의 먹줄꼭지] 국산 외제·외제 국산
입력 2011-07-28 20:05
‘국산(國産)’, 그리고 이것과 짝을 이루는 ‘외제(外製)’라는 한 쌍의 단어처럼 복잡한 느낌을 주는 말도 흔치 않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는 이 이분법이 우리의 삶에 주는 울림은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에서부터 근원적이고 이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대에 따라, 계층에 따라 경험도 다르고, 따라서 그 울림의 진폭도 달라지긴 하겠지만, 이들이 지난 수십 년에 걸친 한국현대사의 궤적을 일상에서 피부로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키워드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의 생활 속에 너무나 넓고 깊게 배어 있다 보니 보통 때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끔씩 수면 위로 머리를 삐죽 내밀 때마다 아직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그런 말이다.
그 당혹감의 바닥에는 ‘국산/외제’라는 물질의 이분법을 ‘긍정/부정’이라는 상징의 이분법으로 바로 옮겨놓지 못하게 하는 껄끄러움이 있다. 이 껄끄러움은 가격과 품질이란 경제적, 기능적 함수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안에는 소속감과 자부심, 죄의식과 동경심리 같은 심리적, 문화적 부분도 있고, 이를 둘러싼 법적이고 제도적인 부분도 있다.
물론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도덕적 상징이 큰 몫을 해왔다. 각각의 부분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해 왔다.
한편으로는 국산품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소비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풀리면서, 그림이 많이 달라져 왔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일상에서 가깝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최근의 한 가지 변화가 이 구분 자체를 어렵게, 또는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자동차의 예를 들어 보자. 작은 볼트, 너트까지 세어보면,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의 수는 대략 3만개 정도다. 그럼 일제차는 그 자동차 안의 3만개 부품이 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을까? 국산차도 수입차도 100% 모두 한 나라의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차는 이제 없다. 미국에서는 가치기준으로 75%에 ‘국내산’의 선을 긋는다. 그 기준대로라면 도요타가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하는 캠리(80%)는 웬만한 GM이나 포드의 차들(73%)보다 오히려 더 ‘진국 미국산’인 셈이다.
또 이런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회사의 생산과 판매활동에서 이제 국적이나 국경은 별 의미가 없다. GM은 본사를 미국에 두고 있지만 오랫동안 독일에서 오펠, 영국에서 복스홀, 호주에서 홀덴을 생산해 왔다. 또 스웨덴차라고 알고 있는 사브나 이탈리아 브랜드인 피아트도 GM이 소유하고 있다. 포드가 절반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볼보(스웨덴)는 작년에 중국의 지리(吉利)자동차로 넘어갔다. BMW(독일)는 미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일본에 수출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인도에 수출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하고, 대만에서 만든 부품으로, 슬로바키아에서 조립한 기아차를 상상해 보자. 먼 미래의 일처럼 들리지만 지금 유럽에 가면 볼 수 있는 기아차는 그렇게 만들어진 차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차/수입차의 구분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 이 자동차에 국적이 있기는 한 걸까? 이런 질문은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단일국적 제품을 대상으로 정의되었던 원산지 개념 자체도 바뀌고 있다. 요즘 마케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원산지를 제조 원산지, 브랜드 원산지, 부품소재 원산지 등으로 나누고 있고, 이 각각의 원산지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산과 외제의 구분 자체가 어려워지는 이런 상황은 “국산품 애용이 애국의 지름길”이라고 배웠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굵은 선으로 국경을 그리는 훈련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혼란의 과정이 ‘세계화’ ‘글로벌화’ ‘전지구화’라고 부르는 큰 흐름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지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FTA 협정 체결도 결국은 경계 허물기, 장벽 낮추기라는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흐름이 좋은 거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분명한 건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거고, 따라서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든 물건을 다른 나라에 내다 파는 것을 경제성장의 중심축으로, 국민동원의 이데올로기로, 더 나아가서는 국가정체성의 토대로까지 삼았던 우리 같은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뭘 어떻게 바꿔 생각해야 하는지는 아직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필요하다. 생산이 국경을 넘나드는 만큼 소비도 세계화되고 있다. 칠레와의 FTA가 시장에 쌓인 고추 값을 움직이고, 유럽연합과의 FTA 협정 체결이 백화점에 걸린 핸드백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외제라고 무조건 더 비싸게 주고 살 필요도 없어야 하고, 또 국산이라고 무조건 사주는 일도 없어야 한다. ‘국산외제’도 ‘외제국산’도 가능해진 이제 소비자들도 금 긋기를 다시 해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폭이 넓어진다는 논리를 곰곰이 따져보지 않고 그저 비애국적인 것으로 몰아가기만 하는 세계화는 ‘자민족 중심주의’의 소비자판 확대본일 뿐이다.
◇And는 서울대 사회학과 한신갑 교수의 ‘먹줄꼭지’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먹줄꼭지는 먹줄 끝에 달린 뾰족한 나무쪽을 말하는 것으로 줄을 치려는 물건에 꽂는 물건입니다. 사회현상 등을 먹줄꼭지처럼 기준선을 제시해 분석하겠다는 뜻입니다. 한 교수는 1962년 인천生으로 1985년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에 미 콜럼비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코넬대와 일리노이대에서 가르쳤다. 2005년 연세대에 교환교수로 와 서울서 일년을 보냈고, 2010년에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