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어·페친과 살으리랏다… SNS 고수 3인, 그들이 사는 법

입력 2011-07-28 18:17


‘케빈 베이컨 법칙’은 낡았다.

199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케빈 베이컨 게임’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를 매개로 누가 가장 짧은 경로를 거쳐 케빈 베이컨과 만나는지를 찾는 게임이다. 지난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베이컨은 다작(多作) 배우로 유명하다. 게임은 어떤 배우가 출연한 영화에서 시작하여 그 영화에 출연한 또 다른 배우로 연결시키고 그 배우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를 생각해내는 방식으로, 베이컨을 만나는 가장 짧은 과정을 찾으면 이긴다. 베이컨을 만나기까지 영화 편수는 많아야 6개라는 설명에 착안해 6단계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케빈 베이컨 법칙이 나왔다.

하지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잘 활용하는 이들에겐 6단계가 4∼5단계로 줄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이나 가로수길 외에 ‘페이스북광장’ ‘트위터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페이스북 친구(페친) 한도인 5000명에 육박하는 친구가 있고, 만 명 이상의 트위터 팔로어(내 글을 읽으려고 등록한 사람)가 있는 SNS 고수들은 어떤 사람일까.

25세 대학생 박진명… 트위터는 나의 무기

“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요? 제가 취재 가치가 있을까요?”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기자의 전화에 내가 한 첫 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였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평범한 대학생이자 취업 준비생. 낮에는 취업 세미나에 가고 밤에는 토익 수업을 듣는다.

한양대에서 해양환경과학을 전공했다. 좋은 학문인데 기업들은 관심이 없다.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다 보면 경영학과, 전기공학과 등 모두 전공별 고유 번호가 있는데 우리 과는 없다. 하지만 꿀릴 게 없다. 나는 꽤 알아주는 트위터리안이다. 10만명 이상의 팔로어가 있다. 이 정도 팔로어 숫자는 대학생 중에서는 최상위권이다.

SNS는 내게 취업 무기다. 나는 SNS를 통한 온라인 마케팅,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온라인 구전 마케팅) 등을 배웠고 나만의 시각도 키웠다. 이를 활용해 온·오프 융합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 나를 채용하는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원래 이 분야에 별 관심이 없었다. 동아리인 한국대학생인재협회에서 권유를 받고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이었지만 아는 사람들과 맞팔(서로 팔로어가 되는 것)을 맺고 내 관심 분야 사람들 중심으로 팔로어 요청을 하면서 차근차근 숫자를 늘려갔다.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 숫자가 늘면서 재미가 붙었다.

사람들을 더 모으려는 고민 끝에 외국의 재미있는 사이트를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했더니 나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후 포토개그와 건강정보 등 분야를 정한 뒤 이에 맞는 글들을 내 트윗에 올렸다. 지금도 팔로어가 매일 최소 300명씩 늘고 있다

하루 3∼4시간은 트위터를 붙들고 있다. 잠자는 시간도 줄였다. 뭐든 그저 되는 일은 없다.

팔로어가 많아지자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연세대 등 7개 대학에서 강의했고 직장인 상대로도 SNS 활용법을 가르쳤다. 책을 내보자는 제안도 받았다. 날이 갈수록 나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트위터 때문에 우울한 적도 있었다. 어느 회사 면접에서 ‘당신은 솔직한 면이 없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회사에서 내 트위터 글들을 다 조사했던 것. 개인적인 글을 잘 쓰지 않다 보니 이런 평가를 받은 것 같다. 또 박진명이라는 이름보다 내 아이디로 존재한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내 아이디는 내가 아니다.

26세 사회운동가 김나은… SNS는 우물 밖 나가는 길

‘SNS계의 여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내 별명이에요. 순전히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예쁘게 나온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둔 덕분이죠. 이거 말고도 많아요. ‘인권닭강정’ ‘효심 깊은 딸’….

인권이 붙은 건 시민단체서 일한 경력 탓이고, 닭강정이 들어간 건 얼마 전 부모님이 목포에서 닭강정집을 열어서예요. 제 트위터 친구들, 페친들이 저를 통해 부모님 가게에 택배 주문을 하죠. 제 페친은 4800명쯤 되고, 팔로어는 1만1000명이 넘네요. 혹시라도 진짜 친한 사람들이 페친 안될까봐 일부러 5000명을 안 채웠어요.

법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IT쪽에서 오래 일했네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IT 담당자로 블로그 구축을 했고,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곽노현 후보 캠프에서 일하며 SNS를 담당했어요. 이후에는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등을 이용해 인권운동을 했어요. 지금은 공정무역커피 홍보이사 직함이 있군요. 월급은 없어요.

친구가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연결된 사람이 많아야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사람을 늘릴까 실험을 많이 했어요. 편지를 써서 올리기도 하고 노래를 올리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저를 ‘궁금한 사람’ ‘알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어줬지요. SNS에서 사람을 많이 모으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사람들이 궁금하게 만들어야 해요. 20대 여성이란 점이 도움이 안 됐다고는 못 하겠네요. 프로필 사진이 예쁜 여자면 친구 숫자가 일반 남자 계정보다 3배 정도 빨리 늘어난대요.

‘나는 네가 지나온 길을 알지 못하고, 너는 내가 지나온 길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면 서로의 지나온 길에 대해 알 수 있다.’ 독일 유대인 사상가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에 나오는 말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인데 SNS가 딱 이래요. 저는 기업 활동이나 돈버는 것을 잘 모르고, 야구도 잘 몰라요. 하지만 SNS를 하면서 이런 분야에 잘 아는 분들을 만나게 됐고 제가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됐죠. SNS를 통해 오프라인에서까지 만난 사람 숫자요? 100명은 넘을 걸요.

트위터는 제게 기회예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SNS가 없었다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SNS를 열심히 하다가 오바마 대통령과도 맞팔하게 될 것 같은데요.

54세 사업가 이활… 페이스북은 미래다

2007년 제 나이 쉰, 아내 나이 마흔 다섯에 늦둥이를 봤습니다. 이제 네 살이에요. 큰딸과는 22살 차이지요.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행복한 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 6월에 위암 진단을 받았고, 한 달 후에 위를 거의 잘라내는 위전절제(胃全切除)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됐지만 죽을 때까지 매달 한번씩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1년 동안 계속된 항암치료도 고통스러웠어요. 원래 체중이 76㎏ 정도였는데 항암치료 때는 46㎏까지 줄었습니다.

제가 항암치료를 받던 기간에도 다니는 교회에서 안내 봉사를 계속했어요. 제 모습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셨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회복된 것 같습니다. 주변으로부터 받은 게 많으니 뭔가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5월 페이스북을 시작했습니다. 좀 쓰다 보니까 이를 잘 활용하면 많은 사람한테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예전에 제약회사에 다녔고 또 암환자였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건강 관련 정보와 암 관련 정보들을 꾸준히 올렸습니다. 암협회, 각 대학병원 링크도 걸어놨고요. 암이란 게 막상 닥치면 본인과 가족 모두 눈앞이 깜깜해지거든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고, 페친 숫자도 크게 늘었고 이제 4600명을 넘어섰네요.

좀 더 체계적으로 활동하려고 페이스북 내에 ‘암의 예방과 진료’라는 그룹도 만들었어요. 페이스북을 잘 활용하려면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단편적인 글만 올려서는 반향을 일으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건강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안이 됐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 ‘정말 좋은 일 하십니다’라는 말 들으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고요. 또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개인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대학로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를 향한 관심이 사업장까지 연결되더라고요.

페이스북은 제 미래입니다. 이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구상을 하게 됐고, 새로운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SNS시대의 슬기로운 생활

확실히 SNS시대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SNS 이용자는 2009년 11월 119만명에서 올해 1월 1066만명으로 1년2개월 만에 9배 가까이 늘었다. ‘SNS 안 하기’가 ‘휴대전화 개통 안 하기’만큼 힘들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

SNS 고수들은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맞팔좀비’가 되지 말라고 충고했다. 맞팔좀비는 그저 팔로어 숫자를 늘리고자 아무에게나 팔로어가 돼 달라고 조르는 사람을 뜻한다. 단순히 팔로어 숫자가 많다고 해서 영향력이 커지지는 않는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박병호 교수는 “팔로어건 페친이건 양보다 질”이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설정한 목적에 맞는 이들을 중심으로 관계를 확장해가는 것이 좋다.

팔로어, 페친 숫자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다면, 당신의 SNS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김나은씨는 “제품을 언급해주는 대가로 10만원씩 주겠다는 제안도 받아봤다. 하지만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고 말했다. ‘○○가 좋아요’라는 글을 올리는 순간, 당신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애써 쌓은 네트워크는 무너질 것이다. 신뢰가 네트워크의 핵심인 것은 현실에서나 SNS에서나 똑같다.

글·사진=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